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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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쾌한 교리와 가르침
말일성도들은 현존하는 예언과 계시를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의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많은 경전적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신학은 풍부한 내용과 성경적 논거와 실천적 해석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교리는 타 종교 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명료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교회 내에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전후좌우로 교리상의 혼란과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거의 업다. 이들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매우 다른 체계를 갖고 있는데 본장 에서는 그 여러 가지 교리와 가르침 중에 가장 핵심적 문제인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 그리고 인간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다음으로 일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일부다처제와 몰몬경 등 다른 경전에 관한 해답을 하고자 한다.
1.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우리가 어떤 종교를 갖든지 자기가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종교인이 되기 쉬울 것이다. 말일성도는 신앙개조 개조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 다"라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말일성도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으로 정하고 그 외 누구도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다. 즉 아담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죠셉 스미스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신앙의 대상인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말일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신회(Godhead)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즉, 세분은 우주를 관리하는 평의회의 구성원이다. 말일성도는 세분의 인격체는 각기 다른 개체 이지 일체(一體)가 아니라고 믿는다. 즉 삼위일체( 三位一體)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속성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주로 성서 상에서 문제가 되는 이론을 중심으로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의 아버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가? 말일성도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모두 육신의 아버지가 있는데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자기 부모를 통하지 않고는 이 지상에 올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또는 靈魂)과 육체로 만들어졌다. 육(肉)은 지상의 부모로부터 출생 시에 받은 것이고 영(靈)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두 분의 아버지가 있는데 한 분은 하나님 아버지로서 영의 아버지 이며 한 분은 우리 가정의 아버지로서 육의 아버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죽음을 “돌아간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곧 영이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세상에 온 모든 인류는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의 영의 자녀로서 서로 형제와 자매가 된다. 우리 가 흔히 교회에서 서로를 형제 또는 자매로 부르는 것은 신학적으로 볼 때 진정으로 영의 형제자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대화하기를 좋아하신다. 자식이 아버지를 찾을 때 언제든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세상의 아버지와의 대화처럼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고 경건한 태도를 갖고 대화하는 것이다.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몸을 흔들거나 비틀며 괴성을 지르고 손을 흔드는 태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모르는 소치인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아버지께 아들이 대화를 청하고는 그런 식으로 감사와 부탁을 드린다면 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정신 이상이 되었다고 금방 의사를 부르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도 중 성구를 몇 분씩 암송하거나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여 시간을 오래 끌고 말을 많이 해야 되는 줄 안다. 기도하는 동안 장황한 성구 암송은 성경지식을 뽐내는 교만한 행동이며 중언부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성구를 장황하게 암송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감사와 부탁을 이해하실 수 있으며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삼라만상을 주관하시는 능력으로 모두 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시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형상을 갖고 계신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약에 하나님이 무형이시라면 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자기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겠는가. 말일성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은 실체가 아니고 그분의 품성이나 속성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7장 54~56절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살펴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히 스데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서 계셨다고 했다. 형상이 없다면 어떻게 좌편과 우편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이 성구 한두 구절을 갖고 어떻게 하나님이 형상을 가지셨다고 증명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전체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금 구약성경 민수기 12장 6~8절을 보자.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 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위의 구절에는 첫째로 대면한다고 되어 있다. 대면한다는 말은 영어 성경에 'face to face'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라는 말이다. 둘째로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다고 했다. 형상이 없으면 어떻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라는 말이 나오며 형상을 보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형상을 갖고 계시며 구약성서 창세기 1장 26절에 있는 것처럼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는 창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양처럼 생기셨다면 우리도 양처럼 창조되었을 것이고 사자처럼 생기셨다면 사자처럼 창조되었을 것이다. 세상 만물 중 사람처럼 완벽하게 창조된 피조물은 없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육체와는 다른 육신과 능력을 갖고 계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는 우리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부활후의 육체는 완전히 다른 육체였다. 부활 후 방문을 닫고 얘기하고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이곳저곳에 나타나셨으나 인간의 눈으로 빨리 구분하지 못했다. 또한 공중으로 승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계셨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 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들어가 보니 열 한 사도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 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 24장 31~40절)
31절에는 예수께서 나타나셨지만 사람들이 그를 빨리 인식할 수 없었고 36절에는 대화 중에 방안에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고 그리고 직접 부활한 육체를 보여주셨다. 또 누가복음 24장 51절과 마가복음 16장 19~20절, 그리고 사도행전 1장 9~11절을 보면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나온다. 육체를 갖고 있다고 해서 능력에 제한을 받지는 않는다. 예수께서도 육신을 입고 있으실 때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신약성경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인간 세계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육체를 갖고 있지만 그 능력과 영성은 전부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이 창조한 세계에 있는 모든 만물에 힘과 능력을 미치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육체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존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인격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하나님도 물질적 존재라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상태를 꼭 '비물질적인 존재로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이 형체를 갖고 계시므로 필연적으로 특정한 넓이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차지하는 공간은 제한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동시에 제한된 공간을 여러 개 갖는다는 것은 비논리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에서는 하나님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갈릴리 앞 바다에 가셨다가 사마리아에 가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 대제사장 집에 가시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곳에 계셔도 세상 어느 곳에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는 누가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곳저곳에 내려오시고 올라가시는 공간의 제한을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세기 11장 5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밝히셨으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와 성약을 세우셨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올라 가셨더라.”(창세기 17장 22절)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데 그의 지식이 무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천사와 종들의 성역을 통해서 모든 피조물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으며 원하시면 친히 방문 하신다. 하나님을 통해 물질이 구성되었으며 에너지가 창출되었다. 그러므로 그를 창조주라고 부른다. 하나님 자신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시며 그의 지식과 능력은 무한하고 영향력 또한 무한하시다. 또 그 분은 지상의 모든 자연력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일정한 궤도에 따라 천체를 운행시킨다. 하나님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다. 그 분은 자신이 직접 행하시거나 도구를 통해 행하신다. 그 분이 육체를 갖고 있어 일정한 곳에 계신다고 하여도 영의 매체나 천사의 성역을 통해 어떤 일도 어느 곳에서나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무소 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것이다. 때때로 성서에서는 하나님은 영이란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형상을 갖고 계신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영으로 표현되는지 의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육체와 완전한 영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둘 다 가지고 계시므로 어느 하나만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 하나만을 가지고 그 인격을 대표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육을 갖고 계신다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영으로만 주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육과 영 둘 다 기록되었을 때는 육 하나나 영 하나로 한 가지만 강조했다고 해서 두 가지의 결합체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즉 사람이 육과 영을 모두 갖고 있으나 성경에서 영 하나만을 기록한 경우가 있는데 이것으로 사람은 육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는가? 요한일서 4장 1절부터 3절까지 읽어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 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이 구절의 영이란 이미 세상에 와 있는 적그리스도의 선지자들이다. 선지자들은 육과 영을 갖고 있지만 영으로만 표현했다. 또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라고 한 말은 하나님을 지지하고 믿는 신앙인을 말한 것이다. 성경 어느 한쪽에서는 하나를 설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을 설명할 때가 흔히 있다. 이 때는 하나인데 반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한 몸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다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에 대해 공부해 보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 아니며 역할이 다름을 설명하겠다. 예수(Jesus)란 구세주의 이름으로서 희랍어에서 나온 말이다. 같은 말 을 히브리어로 표현하면 Yeshua라고 표기되며 영어의 Joshua와 같다. 천사는 동정녀의 약혼자 요셉에게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태복음 1장 21절)
그리스도(Christ)는 일반적인 이름이 아니라 성스러운 칭호이다. 이것은 희랍어에서 나온 것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메시아(Messiah 또는 Messias)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 밖에도 경전 상에는 임마누엘, 구세주, 구속주, 독생자, 주 하나님의 아들, 인자 등과 같이 분명한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죽어야 하는 육체를 가진 아버지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유일한 경우이다. 그는 죽지 않는 육체를 갖고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여자에게서 태어났다. 구약의 이사야서 7장 14절 에는 이것이 이미 예언되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우리는 여기서 독생자(Only Begotten of the Eternal Father)란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세(Pre-existence)에서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첫 번째 영(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 그래서 성경 상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맏형이라고 부르고 또한 장자(First Son)라고 부른다. 어떻게 해서 맏형이 될 수 있을까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진 의심을 이제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왜 또 장자라고 했을까?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이전에 수많은 인류가 출생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첫아들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이것은 바로 전세에서 그는 영의 자녀로서 첫 번째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도 역시 전세에서 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영의 아버지 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 는 육신의 부친이 따로 있다. 그래서 나는 김00씨의 아들이다. 내가 만약에 김00씨의 유일한 외아들이라면 한자어로 나는 김00의 독생자 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모든 인간의 영은 다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졌지만 육의 아버지는 다르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영과 육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될 수 있다. 이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라는 예언을 성취하는데 필수적인 일이었다. 마리아에게 태어날 아이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연법칙의 고차원의 적용 즉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에 의해 잉태되었다. 그 분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인 것이다.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 아버지와 죽는 속성을 가졌으나 순결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라 일컬음을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그 속성에는 죽는 능력과 다시 사는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6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나온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중략-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또 누가복음 3장 23절부터 38절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설명하여 요셉의 아들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 아담에까지 이른다. 이 두 계보 의 기록에는 몇 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으나 이러한 차이점은 유태 족보전문가의 조사에 의하면 서로 일치한다. 마태의 기록은 다윗의 왕위를 합법적으로 물려받은 계승자의 순서를 입증해 주는 왕족의 혈통에 관한 기록으로 마태복음이 유태인을 위해 쓰여진 기록이므로 그 나라의 왕통으로 설명할 때 유태인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기록은 조상이나 가까운 친족을 통하여 내려오는 개인의 가계도로서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해 쓰여진 것이므로 이방인에게 호소력이 있다. 하여튼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설명하면서 요셉계보의 중심으로 삼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요셉의 아들로 착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셉의 계보는 곧 마리아의 계보와 다름없는데 이는 그들이 사촌 간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계보를 다룬 것이다. 성구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에 의해 탄생되지 않았고 마리아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 예수라 하면 다윗의 혈통을 받은 마리아를 칭하는 것이다. 아버지인 하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는 말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히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가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성서에 있는 사실대로 하나님과 아들 예수와 성령을 정의한다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과 아들, 성신은 모두 다른 인격체이며 목적은 같으나 모두 다른 역할을 맡고 계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시요 우리의 영의 아버지 시다. 아들 예수 그리스로는 지상에 육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부활하신 분이고 성신은 육을 갖고 계시지 않으나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 하는 분이다. 이것이 말일성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신에 대한 견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은 같은 분이 아님을 성경을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의 개별성
(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누가복음22장 39절~42절)
"예수께서 나가 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이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 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 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 하나이다 하시니"
이 성구는 가롯유다를 앞세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체포하러 감람산에 도착하기직전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다.1) 이 성구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고 내 원대로 하지 마옵소서 라는 구절이 나온다. 분명히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뜻이 별개임을 설명한다. 즉 아버지의 의지와 아들의 의지가 별개이고 아들이 아버지의 의지에 순종함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가 같은 일체라면 어떻게 의지와 뜻이 다를 수 있을까?
(2)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마태복음 27장 45절~56절)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되더니 제 구 시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 성구는 낮 열두 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어두움이 온 땅에 덮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던 시간이다. 오후 세시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로힘 하나님을 나의'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삼위 일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같은 한 분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예수께서 왜 나의 하나님이 라고 불렀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3)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요한복음 20장 16절~17절)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을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천사들이 그 여인에게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비어 있는 무덤을 보고 누가 주님을 가져갔다고 대답하고 뒤로 돌아 섰을 때 예수가 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한참 있다가 그 분이 예수인 것을 알고서 예수를 부르면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지려고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아버지께 아직 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구가 확실한 것이라면 두 분은 존재가 다른 분이다.
(4) 내 아버지는 곧 너희의 아버지이다(요한복음 20장 17절~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 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 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이 성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아직 아버지께 가지않았으니 자기 몸을 만지지 말라고 말하고 자기 아버지가 곧 우리의 아버지요, 자기의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형제가 되고 첫째로 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자요 우리의 맏형이 된다.
(5)심판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위임받음(요한복음 5장 22절-24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 성구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상의 삶을 마친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질 심판을 집행할 권능과 권위를 위임한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개성과 개체가 다를 뿐 아니라 직분과 직능에서도 분리되어 있다.
(6)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예수 자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심 (마태복옴 24장 36절, 마가복음 13장 32절)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위의 구절은 예수의 재림을 설명하는 성구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족속이 가슴을 치겠으며 큰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큰 나팔소리와・함께 그가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천사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을 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시는 날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 하나님만 아신다. 여기서 아버지의 권능이 아들의 권능보다 상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다른 장소에 동시에 나타남(마태복음 3장13절 ~17절)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 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에 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위의 성구는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침례(세례)를 받을 때 일어났던 일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단강에 계셨고, 성령은 비둘기같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였고, 하늘에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성구는 우리에게 세분의 인격과 개성과 존재가 분명히 구별됨을 설명하고 있다.
(8) 예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임(요한복음 14장 6절~12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 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구절들은 삼위일체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성구이다. 이 문장은 두 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고 하니 아버지와 아들은 한 몸이라는 주장. 두 번째 해석은 아버지 안에 아들이 있고 아들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은 육체나 신분이나 개체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아버지가 우리 인간에게 가르치려는 진리의 내용과 아들이 가르치려는 내용이 같다는 주장.
이 중에서 두 번째 해석이 바른 해석이다. 6절부터 12절까지를 다시 읽어보면 분명히 두 번째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즉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 도 알았으리 로다"라는 구절을 보자.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 가 곧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아버지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뜻이 하나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다음 기도 내용을 끝낼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합니다"라고 마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하나님 아버지께 이어주는 중보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 자이다. 아들을 맞아 들였 다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합당한 권능을 위임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집행하라고 했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의사를 합법적으로 전달하고 집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고 아들은 그것을 집행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서는 필요한 서류, 예를 들어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이나 기타 신빙성이 있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증명만 있으면 바로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필요한 증명을 갖고 오셨다. 그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능력,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는 능력, 자신이 부활한 기적 등 수 만 가지의 증명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바로 이 사실을 믿으라는 얘기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우리 인간을 구원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은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나 깊은 통찰력을 가진다면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구이다 12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라고 되어 있는데 만약 같은 분이라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께로 간다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요한복음 17장 21절 ~ 23절은 다시 이 논증이 옳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 이니 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는 성구는 앞서 인용한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설명해준다. 형제끼리 서로 하나가 되라는 말은 서로 마음을 합한다는 뜻이다. 의사와 의지를 뭉치라는 말이지 육체적으로 한 몸으로 결합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께서 위 성구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은 아버지와 자기의 연합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는 말이다.
(7)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보내심을 받은 분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7장 16절~19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들의 육체는 세상에 속해있고 세상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냈으나 그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제자들도 그렇게 되길 원하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여 달라고 간구했다. 더 나아가서 제자들을 통해 진리를 깨달은 모든 성도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거룩하게 되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이다. 분명히 세상에 보낸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고 보내심을 받은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신분과 개체가 다른 분임을 알 수 있으며 아버지께 자신의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했다. 같은 개체라면 어떻게 보낸 분이 있을 수 있으며 보내진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어떻게 간구를 하는 분과 받는 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분명히 다른 개체를 갖고 있으며 상하관계에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낮을 수 없으며 아들이 아버지보다 높은 위치를 가질 수 없다.
(10)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요한복음 15장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사랑한다는 말은 서로가 다른 인격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같은 몸이라면 어떻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겠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므로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의 영의 자녀이며 독생자이기 때문에 사랑 을 받았다. 그러므로 신분과 지위와 인격체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삼위일체 설을 부인할 수 있는 근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일체임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태양의 비유, 물의 원소의 비유 등이다. 그러나 비유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만든 설득방법이므로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진 사실을 인간의 두뇌로 비유를 만들어 성경을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삼위일체의 논리적 모순을 또 한가지 살펴보자. 삼위일체 설에서 는 하나님 아버지는 육체가 없는 영이라고 한다. 성경에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셨고 현재는 부활하셔서 육체를 갖고 계시고 언젠가는 그 육체를 가지고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개체라면 왜 하나님 아버지는 영만 갖고 계시며 육이 없는가? 하나님 아버지가 육체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영으로 계신다 고 하였으나 아들 그리스도는 부활하여 지금도 육체를 갖고 계신다. 아버지는 영(靈)만 존재하고 아들은 육체와 영을 다 갖고 존재한다면 어떻게 아버지(聖父)와 아들(聖子)이 본체와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삼위일체 설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과연 삼위일체 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성립되었는가를 역사적 으로 관찰 해보자. 삼위일체의 기초 정의는 니케아 신조(Nicene Creed)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피조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동질(同質)이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질이라 함은 아들(聖子)이 아버지(聖父)와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뜻이다. 개신교회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교회 역사(The Church in History, B. K. Kulper 지음)에서 삼위일체 설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B. K.Kulper의 같은 서적 41쪽~46쪽 참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약 3백년 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두 장로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는 이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주장했으니 즉 성부와 성자는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 똑 같다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첫째 되며 아버지와 동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도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교회 지도자들은 양분되어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따르거나 아리우스의 이론에 따랐다. 한때는 아리우스의 이론이 더 맹위를 떨쳤으나 논쟁이 계속되어 그 해결을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가 AD 325년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종교회의를 니케아(Nicaea) 종교회의라고 한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아리우스의 의견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한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라면 이교도와 같이 다신(多神)을 믿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한 분의 하나님을 만들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