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봉 교수 논문:사해(死海)두루마리(Dead Sea Scrolls)
김차봉 교수 논문:사해(死海)두루마리(Dead Sea Scr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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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봉 교수 논문:사해(死海)두루마리(Dead Sea Scrol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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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좀 길지만 잘 읽어보시고 교수님과 유가족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세요 20세기의 최대발견, 사해(死海)두루마리(Dead Sea Scrolls)에 관한 소고 *저자: 김차봉(金次峯) 박사* (1941-2001), 경희대학교 법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학 석사, 예일대학에서 도시정책학 수학, 브리감 영 대학교(BYU)에서 리더쉽연구로 박사,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 전임강사, 브리감 영 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아시아언어학과 교수. '올해의 교수'로 선정서울 서 종교교육원장, 선교사 훈련원 원장. 1973년 1. 동반구(東洋-이스라엘)의 사해(Dead Sea, Salt Sea, Salt Lake), 요단강, 갈릴리호와, 서반구(美國)의 사해, 요단강, 유타호는 이렇게도 지리적으로 유사할 수 있는가? 2. 동반구와 서반구의 두 택한 백성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통해 다른 곳 으로부터 탈출하여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과 기적은 우연한 일치일까? 3. 동반구의 사해를 중심으로 살았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의 쿰 란 사회 백성과 서반구의 사해를 중심으로 번성한 근대에 택함 받은 말일성도 들의 신앙과 경전들의 가르침이 일치되는 것은 우연한 일인가? 4. 20세기에 이러한 것들을 증거해주는 사해두루마리의 발견은 성경의 올바른 해 석과 기독교의 신학적 이론체계를 일원화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5. 20세기의 최대의 발견일 사해두루마리는 가장 오래된 2,000년 전의 구약성서 가 사본이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인 충격이 우리가 해야할 선행 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교회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스포츠 투데이 2001.03.05-09 연제된 기사 <운영자 주>
[추적! 발굴현장]
동굴에서 찾아낸 구약성서 원본 예루살렘에서 30㎞쯤 떨어진 사해(死海) 언저리의 한 골짜기에서 일어난 일. 1947년 어느날 베두인(유목민) 소년이 염소떼를 돌보고 있었다. 한가로이 염소떼를 몰던 소년은 무심코 염소 수를 헤아리다가 깜짝 놀랐다. 한 마리가 모자라는 52마리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세었으나 틀림없이 52마리밖에 안 되었다. 무하마드 소년은 자기가 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길이 저만치 서쪽 벼랑에 멎었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염소는 거기서 처진 것 같았다. 소년은 머뭇거리지 않고 벼랑을 기어올랐다. 이곳저곳 바위 틈을 기웃거리는 소년의 귀에 어디에선가 염소 우는 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왔다. 소리는 벼랑에 뚫린 동굴 안에서 들려왔다. 무하마드는 컴컴한 굴 안으로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아 돌멩이를 던져 보았다. 질그릇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염소가 뛰쳐나왔다. 다시 한 번 돌멩이를 던지자, 이번에는 빈 항아리가 울리는 것 같은 야릇한 소리가 났다. 왈칵 무섬증이 들자 소년은 허둥지둥 그곳을 벗어났다. 부리나케 천막으로 돌아온 무하마드는 친구 아메드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서 가보자. 혹시 누군가가 보물을 숨겨 놓았을지도 몰라.” “요즘 베들레헴 거리에 골동품 파는 사람이 많다는데,보물이 나오면 거기 내다 팔자. 어쩌면 우린 부자가 될지도 몰라.” 뜻이 맞자 두 소년은 한달음에 사해 골짜기로 달려갔다. 굴은 입구는 좁았지만 들어갈수록 넓었다. 안은 길이 8.5m에 너비 3m, 천장이 3m나 되는 꽤 큰 굴이었다. 한쪽에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깨어진 하나는 아까 무하마드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항아리들은 높이가 60㎝쯤 되어 보였다. 무하마드가 조심조심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곰팡내가 확 끼치면서 시커먼 덩어리들이 드러났다. 꺼내어 펼쳐놓고 보니 얇은 양가죽을 꿰매서 이은 문서 두루말이였다. 너비 44㎝에 길이가 1∼8m나 되는 그 두루말이에는 곰팡이에 뒤덮여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깨알만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나머지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도 하나같이 문서 두루말이였다. 무하마드와 족장은 돈을 더 받고 싶은 욕심에 다른 골동품상점으로 갔다. “이거 아주 귀한 물건인데, 좀 넉넉히 쳐줄 수 없겠소?” 족장의 말에 상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군요. 한 사흘 기다려 주신다면 알아보고 나서 값을 매기겠소만.” 무하마드와 족장은 두루마리 5개를 그곳에 맡기고 돌아섰다. 골동품상점 주인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 그 길로 예루살렘의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사무엘 대주교를 찾아갔다. 한동안 두루마리를 살펴본 대주교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의 눈에 놀라움과 경외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한참 지나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5파운드에 사겠소. 이 글자는 틀림없이 헤브라이 글자일 거요.” 헤브라이(또는 히브리, 헤브류)는 이스라엘 민족의 옛 왕국 이름이다. 사무엘은 두루마리에 쓰여진 헤브라이 문자가 구약성서 원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신약과 함께 그리스도교의 2대 경전인 구약은 특히 유태인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경전이다. 구약은 야훼(여호와) 하나님이 당신께서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과 맺은 약속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야훼의 계시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토록 성스러운 구약의 원본이 그때까지도 발견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사무엘의 가슴은 너무나 두근거려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예루살렘에 있는 아메리카 동방연구소로 트레버 박사를 찾아갔다. 확대경을 대고 두루마리에 적힌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던 트레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 야훼여! 이것이 꿈이 아니기를! 어떤 은총으로 내가 이 귀중한 것을 보게 되었을까. 대주교님, 이것은 틀림없는 구약 원본입니다. 더 조사해 보아야 하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구약 원본이 틀림없습니다!” 트레버는 한참을 더 살핀 뒤 두루마리 가운데에서 구약 성서의 이사야서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기뻐서 얼싸안고 울었다. 그러다가 웃고,또 부둥켜안고 울면서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참 지나서야 트레버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글씨체로 보아 이것은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진 것입니다. 어서 사진을 찍어 과학자들에게 보여서 원본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두루마리를 잘 다듬어 사진을 찍는 데에는 무려 아홉 달이 걸렸다. 사진이 여러 나라 고고학자들에게 보내진 때는 1948년 2월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3월15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고고학 교수인 알브라이트 박사로부터 사무엘 대주교에게 편지가 왔다. ‘이처럼 거룩한 경전을 구해서 보내주신 대주교님께 축복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문서는 구약 원본이거나 원본을 필사한 것입니다.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7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므로, 약 2,000년 전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참으로 큰 발견입니다. 부디 나머지 두루마리도 찾아서 구약 39권을 모두 갖추기를 빕니다.’ 그때까지 구약은 서기 10세기 때 것이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설사 원본이 아니라고 해도 알브라이트의 말처럼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것이라면 1,000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성서를 발견한 셈이다. 히브리대학 고고학부장 수케닉 박사도 아메드로부터 사들인 두루마리 3개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 또한 두루마리가 구약 원본임을 알고 있었다. 나머지 두루마리들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구약 원본임을 증명하기는 시간 문제였다. 그 무렵 나머지 두루마리 5개를 사무엘 대주교가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무엘과 수케닉이 만난 날,베들레헴 골동품상가에서 갈라졌던 두루마리 8개가 모두 합쳐진 그 날은 인류가 잃었던 보물을 되찾은 날이 되었다. 그들은 두 달 동안 두루마리를 샅샅이 조사하고 나서 기자들을 불러모았다. “여러분, 이 두루마리에는 구약의 이사야서 원본이 들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에세네 교파가 썼던 ‘공동체 계율’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의 싸움’ ‘감사 찬미가 모음’ 따위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크나큰 기쁨과 행운을 얻는 일이 다시는 올 수 없을 것입니다.” /이병철(칼럼니스트) 제2장 사해(死海)두루마리의 개념과 역사적 배경 제1절 사해두루마리란? 사해 근방의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로 된 성경과 기타 종교적 문헌을 말 한다. 제2절 사해두루마리의 발견된 경위와 발견된 내용물 1947년에서 1956년 사이 예루살렘에서는 동쪽, 여리고에서는 남쪽에 있는 사 해 근방 와디쿰란(the wadi Qumran) 그리고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과 와디 무라바이트(wadi Murabb'at) 등에서 구약의 사본을 비릇하여 여러 가 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외경들, 그리고 Qumran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엣세네 인으로 추정)의 기록과 그 사회의 규범 등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1) 첫 번째 발견 경위 : (a) 1947년 봄에 아랍 사막의 유목민인 '타아미레 베두인지파(Ta'amir도 bedouin tribe)'에 속한 '무하마드 아드딥(Mohammed Edh-Dhib)이란 사람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던 중에 (2) 하박국의 주석[(1QpHab) 길이가 5피트, 넓이 5인치], (3)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 [과거, 현재의 전쟁과 미래의 예상전쟁(IQM)], (4) 쿰란 사회의 훈련고본(1QS), (6) 감사찬송[감사를 표시하는 시편(1QH)], (7) 이사야서의 단편(IQI뉴), 즉 7개의 두루마리를 첫 번째 동굴(CaveⅠ)에서 발견했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Q1)이라 한다. (c) 1947년 이른 여름 수리아의 정통 교회 대 주교인 마르 아라나시우스 예수에 사무엘(Nar Athanaasius Yeshue Samuel)은 그 두 소년으로부터 7개 중 4개의 두루마리를 샀다. [상기 (b)의 (1)(2)(3)(4)] (d) 남은 3개의 외경 창세게, 감사찬송, 이사야서 단편 1개를 히브리 대학교 팔레 스틴 고고학 전문가의 슈케닉(Eleazer L. Sukenik) 교수가 베들레힘의 중간 상인으로부터 매입 했다. (e) (f) 그 후 탄소 14측정법 [c 14- 카본 테스트 14(Carbon-14 test)라고도 함=방사 능 방출 정도에 따라 연대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사해 두루마리는 BC 200 년 -AD100년 사이의 고문서로 판명되었다. (2) 2번째와 3번째 발견 첫 번째 발견된 두루마리들이 탄소 14측정법[Carbon-14 testing]으로 고고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예루살렘 고고학자들은 발굴대 를 조직하여 유다의 광야의 동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답사들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치열한 전쟁을 지연 되기도 했으나 고고학자들의 집념과 노력으로 본격적 인 탐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성서적 문헌이 발견되었 다. (a) 1949년 불란서의 뻬르 드 보씨(Fere Roland de vaux)와 팔레스틴 고고학 박물 관 지배인 랑게스터 하딩(Gerold Lanster Harding)그리고 도미니카의 성서 학 교 회원들은 1947년 아랍의 목자 무하마드 아드딥에 의해서 발견된 Cave-Ⅰ 을 다시 확인했다. 그 동굴은 길이가 26피트, 넓이가 6피트 였으며 그곳에서 파피러스와 양피지 의 두루마리 부스러기 600여개와 깨어진 도기, 아마포 조각등을 발견했다. 팔레스틴의 습한 기후는 이와 같은 사본을 보존하는 데 적절하지 못한 지역이 나 이 사본들이 나온 동굴은 비가 거의 안오는 유대 광야에 위치하고 있어서 참으로 건조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다행히 발견된 두루마리들은 보존상태 가 퍽 양호했던 것이다. 뻬르 드 보 교수는 발견된 40개의 큰 항아리 중에서 많은 것을 원상대로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혀 손상이 없었던 AD68년 경 의 원상의 2개 항아리는 현재 히브리 대학에 소장하고 있다. (b) 그 후 많은 성서 고고학자에게 자극이 되어 1952년부터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 되어 11개의 동굴에서 각 자료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4번째 (4Q)에서 382개의 사본 단편이 발견되었는 데 그 중 약 1) 구약 성서 중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서의 단편 2) The Book of Enoch (에녹서) 3) The Book of Noah (노아서) 4) The Testament of Levi (레위의복음) 5) The Testament of Naphtali (납달리의 복음) 6) The Sayings of Moses (모세의 노래(작은 신명기) 7) The Scroll of the Patriarchs (축복사의 두루마리) 8) The Temple Scroll (신전 두루마리) 9) The Psalms of Joshua (여호와의 시편) 10) A Vision of Amram (아므람의 시현) 11) The Prayer of Nabonidus (나보나이더스 기도) 12) The Book of Mysteries (신비의 책) 13) The assumption of Moses (모세의 승천기) 14) David's Poem (다윗의 시편) 15) Jubilees (작은 창세기) 16) Tobit ( 토비트; 천주교 제2 정경) 17) Ecciesiasticus (집회서; 천주교 제2 정경) 18) Epistle of Jeremy (이레미아서; 천주교 제 2정경) 19) Micah Commentary (미가서 주해서) 20) Psalms Commentary (시편 주해서) 21) Isaiah Commentary (이사야서 주해서) 22) Genesis Commentary (창세기 주해서) 23) Hosea Commentary (호세아서 주해서) 24) Nahum Commentary (나훔 주해서) (d) 특히 유물 중에서 1952년 봄 동굴 3(Q3)에서 산화된 길이 32인치의 동판(The Copper Scrolls)을 3개 발견했다. 이 동판은 화확적 처리되어 원문을 회복되었 고 다음과 같은 놀랄만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Hebron(헤브론)과 Nablus (나블러스) 사이에 200톤 정도의 금과 은으로 된 보물이 거의 60여 곳에 땅속 16피트에서 -18피트 깊이에 묻혀 있다 한다. 이곳에 묻힌 금과 은으로 된 보물 이 대부분 (e) 발견된 동전의 종류와 그 연대 Description of Coins Number 어디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별할 수 있을까? 일반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간단 명료한 전세에 대한 이론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경전 중 아브라함서 3장 23절을 인용하여도 하나님께서 전세에서 아브라함을 잘 알고 있었다는 구절을 찾을 수 있다. 전세가 존재한 또 하나의 좋은 성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은 9장 1절부터 2절에 "예수께서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맹인 된 한 사람 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 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여 기 만약에 전세가 없었다면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에게 이 사람의 죄입니 까? 라는 질문을 물을 수 있겠는가?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면 낳기 전의 죄 즉 전세의 죄를 묻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른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것은 히브리서 12장 9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또 우리 육체 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 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육체의 아버지는 우리를 낳아주신 육신의 아버지이며 영의 아버지는 우리의 영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이시다. 어디서 하 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을 만들었는가? 그곳은 바로 전세이다. 다음 성구를 보 자. 즉 욥기 38장 2-4, 7절에 "땅의 기초를 놓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 게 소리하였다"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전세에 영체로 존재했던 우리 인간들이 다. 지구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전세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의 지으심 을 받고 하나님과 같이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2)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는 다음과 같은 이론으로 예정설(The Doctrine of Predestination)을 부정하고 예임설(The Doctrine of Foreordination)을 주장 한다. 예정설(豫定說)이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절대적인 권능으로 인간의 의 지(意志)에 앞서서 내세에 구원할 사람들과 멸망할 사람들을 미리 규정해 놓으 셨다는 이론이다. (기독교 대사전: 대한 기독교서회 1971년판 685페이지 참조) (a) Augusttinus, Aurelius(어거스틴 AD354-430)은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Agency)를 인정하는 펠라기어스의 의견을 부인하고 예정을 주장했다. (b) Luther, Martin (루터 AD 1483 - 1546) 에라스머서의 자유의지설과는 반대 로 "노예의지에 대하여" (De Servo Arbitrio)를 쓰고 예정설을 지지하였다. (c) Carvin, John (칼빈 AD 1509 - 1564) 누구보다도 예정설을 주장한 신학자는 칼빈이다. 예정설은 칼빈 신학의 특색이다. 그는 하나님은 지상자(至上者)이 시다. 그러므로 일체의 구원은 그의 의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학적 이론을 전개하기 전에 우리가 건전한 상식으로 생각할 때 하나 님께서 내세에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을 미리 결정하셨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성서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인간은 선하고 의를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가르 치고 있다. 또한 교회의 설립의 목적도 올바르게 살도록 권고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도록 교육하여 하나님과 같이 훌륭한 품성을 지니도록 하 는데 있다. 만약 예정설과 같이 모든 구원이 미리 하나님의 의지에 규정되어 있다면 경전 은 왜 필요하며 교회 그 자체가 회개를 통한 구원이 존재하겠는가? 예정설은 인간의 학설이며 이론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나 참된 교리가 아님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규정했다면 어떻게 우리 인간 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심판을 하실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론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인간의 아집 과 독선과 편견으로 신성한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 된다. 많은 예정설을 주장하는 오늘날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와 같은 성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즉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 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서 1장 5절)를 하나님께서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으니 예정이 아닌가?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구원 이 미리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원리와 깊은 이치는 다음과 같 다. 이와 같이 해석되는 것이 예정설이 아닌 예임이다. 여기서 특별한 경우 하늘에 계신 만인의 아버지께서는 어떤 임무를 수행하도 록 전세의 행위와 심판에 따라 세상에 보내기 전에 그 직분에 미리 임명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레미야는 그의 첫째 상태, 곧 그가 전세에 있을 때 하나님의 신임을 얻어, 이 지상의 생을 얻기 전에 미리 높고 거룩한 직분에 임명되었으며, 그는 지상 에 왔을 때 예언자로 부름받았다. 이 원리는 우리가 전세에서 행한 행위의 결 과가 현세에 미친 영향이라고 이미 전술했다. 예레미야가 열방의 예언자로 임명(예임)되었지만 결코 그가 선지자의 직분을 하나하나 수행하도록 예정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언자로서 직분은 그의 자유의지에 의해 잘 수행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언자 요나와 같이 도중에 자기 임무를 포기할 수 있다. 즉 다윗 이 행한 잘못은 다윗의 책임을 지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질 수 없는 것 이다. 그것은 다윗이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행위 하나 하나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세기 4장 6절 - 8절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쩜이며 안 색이 변함은 어쩜이뇨, 네가 선을 행함은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 치 아니하면서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의 악행을 꾸짖고 선행을 요구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행위 를 미리 예정하셨다면 꾸짖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사해두루마리의 쿰란사회의 사람들의 이론처럼 그들이 이 전세의 특별한 그들의 행위로 이 지구상에서 선택되었을지라도 이 지구상에서 그들이 결코 그들의 자유의지에 의해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의 원리를 잘 지키지 않을 때 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론이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의로운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 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 은 정죄를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에 구원받을 사람이 정하여 지 고 그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예수께서 그의 제자에게 "만민에게 복음 을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이 이 얼마나 불합리할 것인가? 우리는 만인에게 나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우리는 예언자의 계시에 의한 교리가 얼마나 우리의 신앙에 용기를 주고 확신 을 갖게 하는 가 알 수 있다. [제임스 이 탈메지 박사 "예수 그리스도"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발 행) p. 6 -16 참조. 리그랜드 리차즈 "기이한 업적"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발행) p. 275 - 284 참조] 제5장 지리적 위치로 본 쿰란사회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와 동일점 1. 쿰란지역에 살았던 그들의 도시를 City of Salt Sea(사해시)라고 불렀다. 말일성 도 예수그리스도 교회의 본부가 있는 곳이 미국 유타주 Salt Lake City(사해시) 로서 똑같은 도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동반구에 이스라엘의 지형에 요단강 (Jorddan River)을 중심으로 담수의 호수인 갈릴리(Gallilee)호와 사해(Salt Sea)가 있다. 사해는 무자 그대로 죽은 바다(Dead Sea)로서 물고기가 해초가 살 지 못한다. 서반구에 미국의 유타주에 요단강을 중심으로 담수의 호수인 유타호(Utah Lake) 가 있으며 또한 사해(Salt Sea)가 있다. 각 땅의 Salt Sea 옆에 각각 City of Salt Sea(Salt Lake City)가 있다. 이 둘은 다 Salt Lake 옆에 자리를 잡고 경건 한 신앙을 시작했다. BC 200년경 쿰란사회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경건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건 조한 지역이며 아무도 없는 사해 근방의 사막의 광야로 이주하여 경건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건조하며 아무도 없는 유타주 사해 근방의 사막의 광야로 이주하여 경건한 생활을 개척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똑 같은 지리적 위치 2개의 선민들을 뫃으셨는가? 1) Qumran Community Manual 참조 2) 세계 지도 참조 3) The World Book Encyclopedia [World Book - Childcraft International, Inc., Chicago, London, Paris, Sydney, Tokyo, Toronto,) M Volume 13 pp 661-662-663-664 참조] 특히 이 세계 대 백과사전 제13권 661페이지에는 1848년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성도 몰몬(Mormon)들이 유타의 황무지 사막을 개척하여 첫 농사를 지었을 때 메뚜기때 (Mormon Cricket)가 갑자기 나타나서 농작물을 먹고 있었다. 성도들 은 금식하고 기도하기를 이 재앙을 거둬달라고 하였다. 그 때 하늘에서 갈매기 가 갑자기 나타나고 메뚜기를 전부 먹어 치우거나 솔트레이크에 버린 기록이 간 략히 적혀 있다. 정말 사막 지대에 갈매기가 나타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닌가 그 갈매기의 후손은 오늘날 솔트레이크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곳은 사해이기 때문 에 먹을 것이 없어 유타 주청에서 매일 양식을 공급하고 있다. 2. 도표 1 : 두 곳의 약속의 땅 지도 이 지도는 옛날의 이스라엘 가나안 복지와 현대 이스라엘의 집합의 땅인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계곡과 그 지형이 아주 흡사함을 나타낸다. 유타주는 현대의 모세라고 불리우는 브리감 영에 의하여 몰몬(말일성도)들이 1847년에 이주하여 모래 사막뿐인 땅에 이룩한 새로운 시온의 약속의 땅이다. 그들은 포장마차와 손수레, 그리고 걸어서 장장 1,300마일을 이동했다. 이스라엘(쿰란사회)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본부) 도시이름 City of Salt Sea(사해시) Salt Lake City(사해시) 중요담수 갈릴리호(물고기 많음, 많은 생물이 살고 있음) 유타호(물고기가 많음, 많은 생물이 살고 있음) 중요강 요단강 (갈릴리호와 사해를 연결함) 요단강(유타호와 연결함) 죽은 바다 사해(Salt Lake)(Salt Sea)(Dead Sea) 소금기가 보통 대양보다 8배 많아 물고기와 기타 생물이 하나도 살 수 없음 사해(Salt Lake)(Salt Sea)(Dead Sea) 물고기와 생물이 하나도 없음. 소금 기가 보통 대양보다도 8배가 많아 물고기와 기타 생물이 하나도 살 수 없음. 이주 BC 200년경 예루살렘에서 그 당시의 주류를 이뤘던 타락된 종교 무리인 바리세파, 사두게인 등의 무리로부터 탈출하여 건조한 사막 지대 사해근방의 무인의 광야를 개척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킬벳 쿰란) 건전한 신앙생활을 시작함. 예언자를 두고 엄격한 규율 밑에서 집단 생활. 서기 1847년 미국의 동부 미주리주, 일리노이주에서 주류를 이뤘던 "입 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타락된 기 독교의 무리로부터 탈출하여 건조한 사막지대 사해 근방의 무인의 광야를 개척하여 도시를 건설하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시작함. 예언자를 두고 엄격한 규율 밑에서 집단생활. 오늘날은 그 무인의 황무 지가 미국의 50개 주(州) 중 하나인 유 타주를 만들었다. (교회설립 1830년 4월 6일, 이주완료 1848년) 경전 성경 외에 많은 경전을 갖고 있었다. 계시를 중요시함. (성경해석은 계시에 의해 오직 한 가지임) 성경 외에 몰몬경, 값진 진주, 교리와 성약을 갖고 있다. 계시를 중요시함 (성경해석은 계시에 의해 오직 한가 지임) 제 6장 쿰란사회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의 기타 중요 교리의 동일점 편의상 쿰란 사회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현재 시제로 쓴다. 제1절..원죄설 부정 쿰란 사회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몰몬교회)는 둘 다 원죄를 믿지 않는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승되므로 갓난 어린아이도 죄가 있다는 원죄설을 부인한다. 만약 원죄를 인정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시지 못하시다. 자기의 죄는 자기의 책임으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아담의 죄는 우리 개인에 전승되지 않는다. 전 인류에게 영향을 준 아담의 범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그 효력을 지닌 것이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온 인류가 복음의 법과 의식을 지키므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의해 심판을 받으며 아담의 범법으로 인해 형벌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아 침례란 있을 수 없다. [G. Vermes, OP, Cit., Page 78,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 신앙개조 제2조] 제2절..성찬 의식 쿰란사회와 몰몬교회는 성찬을 집행하며 성찬을 취할 때 신권의 반차에 따른 순위에 의해 성찬을 든다. 또한 성찬은 그리스도의 파와 살을 기억하는 것이지 떡이 살로 변화하며 물이나 포도주가 피로 변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이 두 사회는 다 신권(神權: Priesthood)이 있고 이 신권에 의해 교회를 운영한다. [William Sanford Lasor, OP. Cit., p.160, p.101] 제3절..안식일과 금식일 이 두 사회는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며 고아나 과부 그리고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위해 정기적인 금식일을 제정하고 그 날은 모든 회원이 금식한 후 그 기금으로 그들을 돕는다. 병든 사람에게 기름 축복을 했다. [William Sanford Lasor, OP. Cit., p.183, G. Vermes, OP, Cit., p.103] 제4절..신전(성전)의식의 중요성 이 두 사회는 신전 의식을 중요시 여겼다. 이 의식은 특별히 신비의 부분으로 의식을받은 사람 외에는 공개하지 않는 아주 엄숙하고 성스러운 의식으로서 영육이 정결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큰 축복된 행사이다. 신전(성전)은 주님의 집이기 때문에 아주 영적으로 의식이 집행되도록 잘 준비되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씻는 의식이 있고, 새로운 이름을 주고, 의식을 받고 난 후 Garment(가먼트)를 입어야 한다. 이런 의식도 동일하다. [William Sanford Lasor, OP. Cit., p.183, p.185, G. Vermes, OP, Cit., p.250, p.206] 제5절..연차 대회 이 두 사회는 경전의 말씀을 모든 회원이 열심히 공부하는 제도적인 방법이 만들어져 있으며 매년 수 천명이 모이는 연차대회가 있다. [William Sanford Lasor, p.81 See Annual Meeting] 제6절..참 하나님의 이름 이 두 사회는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과 진리를 통해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말일성도는 승영이란 말을 이와 같은 의미로 쓰는 데 사해 두루마리에서도 이를 찾아 볼 수 있다. William Sanford Lasor, p.102 exalt among the Gods 란 구절부터 읽어내려 오면 승영(exaltation) 이란 용어와 하나님들(Gods)과 영체 등의 몰몬교회에서는 정통 교리로 생각하고 있지만 일반교회에서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교리들이 나온다. 이것은 곧 삼위일체설의 부정이기도 하며 신회(God Head)를 설명한 것이다. 이 책의 William Sanford Lasor는 이와 같은 교회는 참 유일한 교리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의 참 이름은 Elohin으로 말일성도들의 유일한 교리인데 G. Vermes, Dead Sea Scrolls 108 page, The statutes에서 Elhoim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G. Vermes, Dead Sea Scrolls 211 page 에는 승영한 신(神)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We shall bless all the gods who exalt true knowledge.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일성도 교회는 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7절..구원의 조건은 신앙과 행함 쿰란사회는 구원의 문제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 즉 믿음으로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신앙과 그에 따른 율법과 복음에 부응하는 선하고 바른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늘날의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도 믿음으로만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신앙과 아울러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자유의지로 악한 것 과 선한 것 중 선한 것을 택하며 율법과 복음을 실천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이론은 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이론이나 일반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있다. 즉 신앙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서를 단편적으로만 연구한 엄청난 오류인 것이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이 떠난 몸이 죽은 몸인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 교리가 정확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William Sanford Lasor, OP. Cit., p.173, See the End of the Age.] 제8절..진리의 영(그리스도의 영)과 악령(사탄)의 개념 이 두 사회는 그리스도의 영(그리스도의 영)과 악령(사탄)의 개념 또한 영의 개념도 동일하다. William Sanford Lasor의 Dead Sea Scrolls p.95 에 God created him but Satan is prehuman.와 같이 하나님은 사탄을 창조했고 사탄은 전세의 인간이라 했다. 이러한 교리는 말일성도의 교리의 아주 기초 이론이다. 또한 진리의 영과 사탄에 의해 잘 피력하고 있는 것을 같은 책 108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선한 노력과 의를 위해 노력할 때 진리의 영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악한 행위를 할 때 사탄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몰몬경 모로나이서 7장 16절과 17절에 나와있는 내용과 전혀 동일하다. 특히 William Sanford Lasor의 The Dead Sea Scrolls의 186 페이지에 보면 육과 영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육은 필멸의 몸이다. 그러나 영(靈)은 전세에서는 지금 현재의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영체로 존재했고, 계속 영(靈)은 현세나 내세도 계속 불멸의 존재라고 했다. 이것은 몰몬의 교리와 정확히 동일하다. 이 교리는 전세의 이론과 현세 그리고 내세를 정확히 정립해 준다. 제9절..사해두루마리는 몰몬경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임을 증명한다. 본인은 8년 전부터 본 교단의 한국 신학연구원에서 몰몬경 강의를 할 때 항상 학생들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우주의 원리가 경전에 있다면 몰몬경에 있고, 몰몬경에 있다면 야곱서에 있고, 야곱서에 있다면 야곱서의 5장부터 77절까지의 감람나무의 비유에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사해두루마리에서 감람나무(oliver tree) 비유가 실려 있고 그 내용이 몰몬경과 같다. 이 사해두루마리의 발견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이다. 양식과 지식이 있는 기독교인이면 몰몬경을 하나님의 경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밖의 상기 전술한 바와 같이 사해두루마리의 중요성 교리는 거의 몰몬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7장 결론 사해두루마리의 연구 결과 당시 이스라엘 중 가장 진실한 종파인 쿰란사회 무리들은 예언자와 계시를 중요시 여기고 신권을 중심으로 교회를 인도했다. 특히 그들의 교회는 메시아를 기대하는 교회였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 종교의 최고의 다수와 사회의 열광을 차지했던 바리세인과 사두게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이라 했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이단의 무리라 하여 옥에 가두고 처형했다. 신약성서를 통해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의 핵심 종파인 바리세인과 사두게인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고 로마 인들은 둘러리였다 외식하고 말로만 하나님을 찾던 예수님을 죽인 바리세인과 사두게인은 쿰란사회의 사람들을 또한 이단이라 칭했고 이 쿰란 무리들을 냉대했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이단이라 칭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였고 이단이라 칭함을 받은 쿰란사회는 가장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메시아에 대한 신앙이 가장 강했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무리 중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를 이단이라 한다. 이단이란 전통과 권위에 위배되는 종파를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위배되는 조직과 예배의식 그리고 교리를 갖고 있는 교회가 이단이다. 그러나 이 지상에 있는 교회 중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처럼 성서에 입각한 교회는 없다. (1) 완전한 초대 교회 조직(예언자, 12사도, 70인, 장로, 제사, 집사, 감독 등), (2) 계시 의 중요성, (3) 침례의식 집행, (4) 전세의 중요성, (5) 삼위일체의 부정(인간의 교리), (6) 예정설의 부정(인간의 교리), (7) 신앙과 행위의 동시 중요성, (8) 신전(성전)의식, (9) 성찬식, (10) 성서 해석의 일원화, (11) 원죄설 부인, (12) 승영 등은 성서의 정확한 근거로 행해진 것이며 지금까지 쿰란사회에서 잘 비교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를 이단이라 칭한 교회는 이 주장과 전부 반대되는 이론을 갖고 있으며 성서 해석의 정 반대되는 신앙을 갖고 있으니 이단은 누가 이단인가? 이단은 역사가 심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심판하는 것이다. 사해두루마리 연 구 결과는 한 마디로 기독교는 헌신과 희생의 종교와 사랑의 종교다. 행함이 없는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종교는 죽은 것이다.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는 반복된 생활의 연속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죄짓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행동의 신앙이 더욱 바람직한 것이다. 죄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필요하고 이러한 신념과 확신은 성서에 입각한 하나님의 교회 조직과 교리를 기초로 해서 발생되는 것이다. 최근 세계 종교 중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가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고고학적인 뒷받침의 결과이라고 사료된다. 사해두루마리의 발견은 하나님의 큰 섭리이며 모든 기독교인에게 인간의 교리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교리를 추종하여 구원의 대업에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독선적이며 아집으로 쌓여있는 기독교인이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진리를 받아드리 는 포용력을 갖어야 한다. 또한 위선과 황금의 노예가 되어있는 성직자가 있다면 봉사와 희생과 사랑으로 양을 먹일 수 있는 깨끗한 양식을 갖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들은 경전을 읽고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본인은 이 두루마리를 연구하는 가운데 성신이 같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다시 실감했으며 위와 같은 정확한 진리를 다시 확인하므로 큰 간증을 갖게 되었 다. 중요 참고 서적 1) G. vermes, The Dead Sea Scrolls in English, Penguin, USA, 1975 2) William Sanford Lasor, The Dead Sea Scrolls, Moody Press Chigago, U.S.A. 1978. 3) Hugh J. Schonfield, Secrete of the Dead Sea Scrolls, A Perpetua Book and A.S. Barnes and Company,Inc., New York, U.S.A., 1957. 4) The World Book Encyclopedia. A Subsidiary of the Scott & Fetzer Company, U.S.A.. 1980. 5) Henry H. Halley, Halley's Bible Handbook, Zondervan Publishing House U.S.A., 1965 6) 대한기독교서회, 기독교 대사전, 평화당, 서울 한국, 1971. 7) 성경 (신약, 구약) 8)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진주(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 발행) ※사해두루마리에 대한 참고자료와 발굴현장 및 사진 <사진보기> 쿰란(QUMRAN) 사해두루마리 사본 (The Biblical Texts Found in Qumran) 1947년부터 1969년까지 약 20여 년 동안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에서 '유대 광야 두루마리' 혹은 사해 두루마리로 불리는 구약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모두 열한 개의 동굴에서 「에스더기」만을 제외한 구약의 모든 옛 사본들이 여러 종류 발견되었다. 거기에서 발견된 여러 종류의 사본들은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에 속하는 사본들로서 현존하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보다 천년 이상이나 더 옛 것일 뿐만 아니라 구약 본문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 본문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을 비롯한 발굴 문헌들 중에 해독되고 공개된 모든 자료를 마이크로휘쉬 자료에 담아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문헌정보자료실에 비치하여 관심을 가진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유대 광야 두루마리의 발견은 20세기에 발견된 다른 어느 고고학적 발견보다도 성서학계에 커다란 흥미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947년 겨울의 그 엄청난 발견은 사실 우연이었다. 사해 서북부 유대 광야는 근 2천여 년 동안 아무도 정착해 본 적이 없는 불모지이다. 다만, 기원전에 한때 엣센파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가 이 일대에서 살았을 뿐이고 지금은 아랍 유목민이 계절을 따라 옮겨 다니는 황량한 들판에 불과하다. 아랍 유목민의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아 계곡을 훑다가 우연히 한 동굴에서 단지 안에 보관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사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후 수많은 단편이 이 일대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 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 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 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 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 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일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 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 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서,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 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1.<사해사본>이란 무엇인가 금세기 중엽에 그노시스 세계, 헤브라이즘 세계 및 헬레니즘 세계에 있어서 각각 극히 중요한 대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즉, 첫째 1946년(1945년이라고도 한다)에 나일강변의 한 촌락 나그.하마디(카이로의 남쪽 약 570킬로,옛 케노보스키온)에서 그노시스파의 서고를 발견했고, 둘째로 뒤에 말할 1947년의 사해 사본의 발견이며,셋째로, 크레테섬 크노소스 및 그리스 본토에서 출토된 선문자 B가 1952년에 영국 건축가 마이켈,벤트리스(1922-1956)에 의하여 해독되고, 이것이 기원전 1400년대의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라는 것이 판명된 일이다. 사해 사본이 발견된 경위는 이렇다. 1947년 봄(1945년 이었다고 한다) 사해의 북서부 사막의 구릉지대 쿰란에서 베두인(아랍계 유목민)이 양과 염소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리에서 이탈한 한 마리의 염소를 찾기 위하여 한양치기 청년이 반 쯤 허물어진 벼랑의 동굴에 돌을 던졌더니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튿날 그 청년은 사촌 형제와 함께 그 동굴로 기어 올라가 보니 좁은 동굴 속에는 항아리의 파편이 흩어져 있으며 안쪽에는 뚜껑이 덮인 항아리 여덟개가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일곱 개는 빈것이었고 나머지 한 개의 항아리 속에는 큰 두루마리 한 권과 작은 두루마리 두 권이 들어 있었다. 이 두루마리를 결국 베들레헴의 고물상에게 넘어가고, 그 해 12월에 예루살렘의 헤브라이 대학이 이 세 두루마리를 사들이게 되었다. 그후 사해의 서북 연안의 동굴은 베투인들이나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답사되고 매년 계속해서 발견이 있었다. 와디,쿰란 지역의 동굴 발견은 1956년 봄까지 11개 곳(1956년에 발견)이었으며, 발견의 순서에 따라서 1(1Q,Qumran Cave1)에서 11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그 밖에 와디,므라바트 지역의 동굴, 킬베트.밀드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들,그리고 킬베드,쿰란과 아인.페스카 폐허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모두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사해 사본 또는 사해 문서라고 부르는 것은,1947년에서 수년 간에 걸쳐서 사해의 서북연안과 서안에 펼쳐져 있는 <유다의 황야>의 동굴이나 폐허에서 발견된 고사본들을 말한다. 발견한 장소나 사본의 내용과 성격 등은 여러가지이며, 그 정리와 분류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간행된 사본과 단편들을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1) 와디.쿰란 지역의 11개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들 (2) 와디.므라바아트(쿰란의 남쪽 약 16킬로미터,예루살렘의 동남남 약 24킬로미터)지역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사본 단편들(대부분은 2세기 전반, 특히 유대인의 대로마 제 2차 반란(AD 132-135년)시대에 속하는 것이며, 이 반란의 지도자 발,코호바에 관한 사료도 포함되어 있다. (3) 킬베트.엘밀드(예루살렘의 동남쪽 약 14킬로미터)지역의 유적(비잔틴 시대의 수도원 자리)에서 발견된 신약성서의 사본 단편들(AD 5-8세기에 속하며, 쿰란 사본들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4) 아랍인 베투인들이 가지고 온 출저 불명의 사본 단편들. 이것들 종에서 사해 사본이 중심이 되는 것은 (1)의 쿰란 사본들이다. 사본의 종류는 600종이나 된다고 하며, 두루마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도 10권 이상이 되며, 특히 동굴 1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전권(54난의 양피지로 돼있으며,전장 7.34미터,폭 평균 26센티미터,각 난은 평균 30행.이사야 66장이 전부 들어있다)과 동굴 4에서 발견된 키므엘기는 귀중한 것이다. 사본들의 연대는 대개 기원전 3세기 중엽에서 쿰란 종단의 본거지가 로마군에게 점령된 기원 67년에 걸쳐있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초에 기록된 사본은 대부분이 구약성서의 사본이다. 대부분의 두루마리 연대는 성서의 사본도 쿰란 종단 문서도 기원전 2세기말 이후, 특히 기원 전후의 그시게에 속한다 <사해사본>중에서 오래된 것은 와디.므라바아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단편들이며 기원전 8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발견된 많은 사본이나 파편을 양피지, 파피루스 ,동판,오스트라카 등에 기록되어 있다. 2.<쿰란 사본들> 은 무엇을 말하는가 쿰란 사본들은 구약성서 정전.외경,주해서 및 쿰란 종단이라고 하는 유대교의 한 종파의 종교 문서로 나뉘고,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다음 네가지 문서로 대별된다. (1) 구약성서 정전의 사본들(단편을 포함) 전체의 약 4분의 1이 되고 에스델기를 제외한 구약 각서가 있다. 신명기 이사야서,소예언서,시편등의 사본은 10종 이상이 된다. 주요한 것은 성마르크 수도원 소유의 <이사야서>의 두루마리(완본)와 헤브라이 대학 소유의 <이사야서>단편,<시편>단편 등이다. (2) 구약성서의 외경(또는 위경) 여러가지 단편이 출토되고 있으나 가장 많은 것이 요엘서,에녹서 등이다. (3) 구약성서의 주해서 창세기,시편,이사야서,호세아서,미가서, 나훔서,스바니야서,하박국서 등의 주해서의 단편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하박국서 주해서는 가장 흥미 깊고 중요한 것이다. (4) 쿰란 종단의 종교 문서 사해 사본을 남긴 사람들의 종교 집단의 조직, 목적 계율,의식 등을 기록한 <종규 요람><종단 계율제요>라고도 한다. <회중규정>,<축복기도문>,<감사의 시편>등의 예배식문에 속하는 문서, 그 밖에 <빛의 아들들의 싸움의 규칙>,아람어로 된 <외경 창세기>등이 있다. 그리고 1952년 3월에 발견된 동굴 3 속에서는 성전의 보물표와 그 숨긴 장소등을 기록한 이른바 <동의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으나 이 리스트가 성전의 보물이었는지,또는 쿰란 종단의 재산이었는지,아니면 허구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동굴 1에서 남쪽으로 약 1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폐허는 오늘날 킬베트,쿰란<쿰란의 폐허>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이미 1851년에 F.두.서씨에 의하여 답사되었고 <사해사본>의 발견과 함께 이 폐허는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51년에서 56년까지에 6회에 걸쳐서 예루살렘의 도미니코파 성서학원 원장 롤런,두.워 신부와 요르단 왕국의 고적 보존국장 G.L.하딩의 지도 아래 킬베트.쿰란의 발굴 조사가 실시되고 그 전모가 밝혀졌다. 3.<쿰란의 폐허>는 어떻게 발굴되었는가 두.워 원장이 얻은 결론에 의하면 ,킬베트,쿰란의 역사는 다음에 네 시기로 나누어진다. (1) BC 8-7세기(철기시대 제II기) (2) BC 2세기말-AD 68년까지 (3) AD 68-90년경 (로마군의 점령) (4) AD 132-135년(유대인의 대로마 제2차 반란시에 유대인 저항군이 점거) (1)의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벽의 일부와 토기,오스트라카(ostraca)의 단편이 출토되고 있을 뿐이다. (2)의 시기에 속하는 유적은 쿰란 종단의 본거지로서 공동 목적을 위해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건물은 북서쪽 구석에 견고한 성루가 있는 30미터 * 37미터의 장방형 건물이며, 안뜰을 둘러싸고 동서남북으로 작은 방이있고, 집회실, 사경실,식당,부엌 등이 있다. 그리고 부근의 와디.쿰란에서 물을 끌어오기 위한 수로,7개의 저수조, 6개의 욕실 등이 있고, 이것들은 쿰란의 종단의 교리나 생활을 아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여기에 쿰란 종단이 형성된 것은 요하네.하르카누스(BC 135-104)시대였던 것 같다. 그후 기원전 31년에 이 근처 일대는 대지진을 만나 포기되었다. 이것은 건물의 균열로 알 수 있으며, 프라비우스.오세퍼스도 이 사실을 전하고 있다. 쿰란 사본들을 만들어 낸 쿰란 종단은 그후 재건된 것 같다. 이곳은 기원전 4년의 헤로데 대왕의 죽음에서 기원 7년경까지 사이에 재건되고 건물의 개축이 있었다. (3) 의 시기는 유대 반란 제 3년에 시작된다. 출토품 중에는 반란 제2년과 제 3년의 날짜가 새겨져있는 화폐 70여매와 로마군의 화살촉 등이 들어있다. 로마군은 1세기 말까지 주둔하고 있었던 것 같다. (4) 의 시기에 속하는 층에서 출토된 로마의 화폐에 의하면 로마 점령군이 약 10년간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후 단기간이기는 하지만 이유대인의 제2차 대로마 반란(AD 132-135)때에 발.코호바를 수령으로 하는 저항군이 일시 이곳에 진를 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두.워는 건물의 동쪽에 있는 묘지들을 시굴했다. 또 제분소,빵 굽는 곳, 도기 공장 등의 작업장도 발견했다. 이상의 모든 점으로 봐서, 이 폐허는 유대교의 어느 종교 집단의 본거지이며, 종단의 구성원은 부근 동굴이나 천막에 있는 일시적인 건물에 살면서 이곳을 도장으로 삼고 있었던 것 같다. 4. <사해사본>의 발견은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종규 요람> 에 의하면,쿰란 종단의 단원은 자원해서 인적이 떨어진 이 유대 황야에 모여서 임박한 종말을 바라보며 메시아의 내림을 기다리는 종단의 엄격한 계율에 따라 생활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사경은 그들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에 의하여 구약성서 각서 및 구약성 외경의 대부분이 양피지, 파피루스,동판 등에 필사되어 남겨졌다. <사해사본>의 발견은 좁은 의미의 성서학이나 성서 고고학 분야 뿐아니라, 특히 유대교의 공인된 교정본으로 정착되기 이전의 구약성서의 본문 비판학은 물론, 기원전후의 유대교 역사나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교섭, 원시 그리스도교단과 유대교와의 관계 등의 제 분야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사해사본>의 연구는 전문가들의 국제적인 협력체제 아래 계속되고 있다. 쿰란 종단의 단원들에 의하여 필사된 구약성서의 사본들은 세계 최고의 것으로 높은 학문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은 예루살렘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나베.샤난<고요한 집>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언덕 위에 있으며 22에이커의 부지에 60년의 역사를 가진 옛 베자렐 미술관 (주로 유대인의 민속 자료,슈나고게의 비품등의 종교 사료,16-20세기의 근대 서구 미술작품)과 성서,고고학 박물관(주로 시리아,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오리엔트 고고 출토품)을 포함한 본관과 사해 문서들을 소장한 고문서관이 있으며, 그 중간에 현대 조각을 배치한 조각 정원으로 돼있다. 그 밖에 창고, 연구실, 수복용 시설 등이 있다. 이 조각 정원의 설계가 그 규모 면에서 전후 최대인이 이스라엘 박물관은 1964년에 창립되고 이듬해 1965년에 개관했다. 그 내용은 광범위해서 고고학적, 미술학적, 민속학적 제 요소와 근대 미술관적 제 요소를 겸비하여 인류 문화유산을 통해서 미래의 전망을 하게 하는 총합적인 민족의 미술관이다. 박물관 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고문서관>에는 사해 문서 및 기원 2세기의 발.코호바의 반로마 봉기 관계의 고문서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고문서관은 지상으로는 흰 돔과 장방형의 검은 외벽을 보일 뿐이고 중요한 부분은 지하로 들어가 있다. 그 내부는 이중의 포물선 돔으로 돼있으며, 그것은 굴곡이 있는 거대한 항아리 같이 생겼다. 소용돌이 치는 굴곡은 천장 꼭대기에 있는 약 1.8미터의 구멍까지 위로 뻗혀 있으며, 그 구멍에서 하늘 빛이 실내로 비쳐 들어온다. 고문서의 역사의 중요성을 재현해 주는 것 같은 설계와 구조의 건물이다. 사해 사본이 발견된 쿰란의 4-5동굴 Qumran caves four and five where the ancient manuscripts known as the Dead Sea Scrolls were found. 쿰란 종파가 살던 마을 Qumran-Ruin on a terrace about 800 meters from the northwest coast of the Dead Sea. In the second century B.C. the sect of Essenes established themselves here. The Dead Sea Scrolls were found in grottos around these ruins. 사해 사본이 보관되어 있던 단지 Jars from Qumran. This was used for storing manuscripts. These two earthenware jars are the only complete ones of their kind in the world. 사해 사본 두루마리를 복원하고 있는 모습 At wo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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