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은 기독교인인가?
몰몬은 기독교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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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몬은 기독교인인가? 저자에 관하여: 스테반 이 라빈슨(Stephen E. Robinson)은 브리감 영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고대 경전학에서 각각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듀크 대학교 (Duke University)에서 성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장로교회 대학인Hampden-Sydeny 대학과 감리교회 대학교인 듀크 대학교와 Lycoming 대학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다. Lycoming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고 이 학교의 종교 학과장과 펜실 베니아 윌리암포트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의 감독직을 겸임했었다. 어쩌면 저자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 종교학과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은 유일한 말일성도일 것이다. 1991년 브리감 영 대학교 고대 경전과 학과장으로 부임한 저자는 대학내의 여러 위원회에 봉사하고 있으며 종교 연구 센터의 값진 진주 분과 과장이기도 하다. 저자의 다른 저서로는 많은 말일성도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개인의 구원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명쾌하게 설명한 Believing Christ가 있다. 이 서적은 몰몬은 기독교인인가?(Are Mormon Christians?) 와 더불어 말일성도들이 읽는 베스트 셀러로 뽑힌다.
서 문
1986년 7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한 때 몰몬이었던 일부 사람들이 솔트레이크 시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 교회를 "기독교"로 부르지 말라고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 진정서에는 미 49주와 31개국의 20,453명의 서명이 들어있었다.(Deseret News, 25 July 1986, p. A10을 보라) 유타 주민들은 대부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말일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이름이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아니던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있지 않는가?" "몰몬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성약이 아니던가?" 하고 자문하게 되었다. 유타 말일성도들은 "과연 그 누가 말일성도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였다. 몇 주가 지난 후 유타의 주요 일간지의 편집란에 실린 독자들의 편지 내용을 보면 이 진정서가 양측에 얼마나 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 비난과 변론, 헌신과 험담이 논쟁 가운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나 양측이 관련된 기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이러한 비난을 거의 들어보지 못하고 설혹 듣는다 할지라도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간주하여 무시해온 유타주 말일성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런지 모르나 말일성도가 소수인 지역에서는 이러한 비난이야말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와 교리에 대한 비난으로 가장 자주 듣는 비난이다. 대부분의 경우 말일성도의 수가 소수인 지역에 사는 말일성도도 이러한 비난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러한 비난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일관성 있는 답변을 해주기가 어렵다. 본인은 본서가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길 바란다. 첫째는 본서가 말일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둘째는 이 비난에 대해 지적이며 논리적인 답변을 말일성도들에게 제공해주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본서는 적몰몬과 말싸움을 하고 싶어하는 분쟁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탄약을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분쟁의 정신은 언제든지 기독교인답지 못한 정신이기 때문이다.(교성10:63을 보라) 본인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참되며 이 교회의 교리가 옳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본서에서 이 두 가지 명제를 입증 하려거나 주장하려는 것이 본인이 의도하는 바는 아니다. 본서가 의도하는 바는 말일성도를 기독교 세계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이용되는 주장에 결함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원리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공정하다. 즉 본인의 주장은 갑에게 적용되는 것이면 을에게도 적용된다는 속담에 기초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거스틴이나 마틴 루터나 요한 바오르 이세가 기독교 주류와는 다른 믿음을주장하거나 다른 견해를 보이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된다면, 요셉 스미스나 브리감 영도 이들과 똑같은 견해나 비슷한 견해를 보이더라도 기독교인의 자격이 박탈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주된 기독교파들이 신학적인 차이나 교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비기독교인으로 비난하지 않고 아량을 보일 수 있다면 말일성도가 보여주는 비슷한 차이점도 아량으로 보아 넘겨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수준에서 게임을 하느냐 하는 정도의 문제다. 한 때 신교와 구교가 서로를 배도하고 상대방을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있은 지 500년이 지나면서 신교와 구교는 서로에 익숙해져 일부 정통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신교와 구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에 아량을 보이려 한다. 신교와 구교는 지금도 상대편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차이점을 "가족 내부의 차이점"으로 보며 넓은 의미에서 서로를 "기독교인"으로 부른다. 문제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생긴지 160년 밖에 되지 않아 기성 교파들이 말일성도에 아직 익숙지 못해 그들 사이에서는 자동적으로 보이는 친절과 아량을 말일성도에게는 보이지 않는데 있다. 본인은 다음 장에서 말일성도는 단순히 표리부동한 신학의 희생자일 뿐이며 다른 기성 교파들 가운데서는 자유롭게 묵인되는 견해와 종교의식이 말일성도에게는 비기독교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인은 이러한 비난은 공정치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임을 밝히겠다. 갑이라는 사람이 다른 기독교인과는 다른 의견을 고수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취급받는데, 을이라는 사람이 똑같은 의견을 가졌는데도 비기독교인으로 취급받는다면 논리에 맞지 않는다. 갑에게 적용되는 것이면 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거나 몰몬이거나 비몰몬이거나를 막론하고 결과가 기준이 없는 놀음이나 표리부동한 신학에서 비롯된다면 이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말일성도를 "기독교" 가족으로부터 배척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복잡하고 상층되는 주장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이 주장들을 다음 여섯가지 기본 범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 (2) 왜곡에 의한 배제: (3) 인신 공격에 의한 배제: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이 광범위한 범주 하나 하나 마다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 교리에 근거한 배제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정의를 내리고 조사해야 할 미묘한 가정들이 있다. 이 가정들을 상세히 조사를 한 본인은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 및 교리에 근거한 이러한 가설과 주장들이 비논리적이며 불공정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독자들은 본인이 고대의 글로부터 보기와 실례를 들 때면 이 실례들이 정통 기독교의 자료로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영지주의자나 마르시오니트파, 라니채니언파와 같은 비정통파의 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또한 본인이 권위 있는 현대 학자의 글을 인용할 때는 이들의 저서들이 널리 인정받는 존경받는 비몰몬 학자들, 즉 전문분야에서 인정받는 권위자들의 글만 인용하였다. 독자들은 본인이 고대나 현대의 별난 "권위자"의 글은 다루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장에서 본인은 정통(ORTHODOX)이라는 용어를 주된 기성 기독교를 가리키는데 사용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지 본인이 "정통" 기독교를 신학적으로옳은 기독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내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리와 브리감 영 대학교를 공식적으로 대변해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본성에서 제시된 견해가 합당한 근거를 둔 것들이기는 하지만 혹 잘못된 견해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1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이 용어는 신약 성서에 세 번 언급되어 있다(행11:26: 26:38 벧전4:16). 그러나 이 어느 성구에서도 용어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가르친 진리를 믿거나 공포하는 사람, 또는 그렇게 추정되는 사람: 기독교 추종자: 기독교 원리와 도덕적인 원리를 받아들인 사람: 그리스도에게 보여 진 것으로 간주되는 충성을 하나님에게 보이는 자: 자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교리와 일치하는 자." 두 번째로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정의는 "그리스도 교리나 믿음을 공포하는 교회나 그룹에 속한 사람"이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이 두 가지 정의에 따르면 말일성도는 기독교인이다. 게다가 이 정의는 대부분의 말일성도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다른 교파에 적용할 때 사용하는 정의이기도 하다. 그 러므로 말일성도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라고 확고히 믿으면서도 구교와 신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서로 달리 해석한다 할지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그의 가르침을따르려 하기 때문에 여러 교파의 개신교인과 구교인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인다. 기독교파 사이에는 교리의 차이점이 있는 게-어떤 경우에는 심각할 만큼- 사실이긴 하지만,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한 교파가 그리스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믿는다. 사전이 정의하듯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교리와 교파간의 차이점을 묵인하는 일반적인 명사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만약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이런 의미로 이해된다면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참으로 심각한 비난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말일성도가 바른 표현이기는 하나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을 때나 문맥상 필요할 때는 몰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비표준적인 정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의를 마음에 두고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용어를 정의 하는 자가 용어를 좌지우지 한다. 예를 들어 말일성도들이(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정의에 근거해) 기독교인을 예언자 요셉스미스의 신성한 부름과 영감서인 몰몬경을 믿는 사람으로 정의하여 말일성도가 기독교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이 정의는 기술적으로는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이같이 편협하고 왜곡된 정의에 동의할 것 같지 않으며 말일성도들은 언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게임을 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고 기독교인을 몰몬이 믿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 하여 비몰몬들이 기독교인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몰몬이 몰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말장난으로 말일성도를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기도교인을 일반적인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와 다른 사람들을 제외시키는 편협한 종파적인 의미로 정의한다. 다른 교파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배타적인 방법으로 정의해 자신들을 배제할 때 아량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위치가 바뀌어자기들이 다른 교파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믿으면 왕왕 이와같은 전략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이들이 말일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를 믿지 않는다거나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심각하게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말일성도가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경배한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모로 보나 이런 식의 게임은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을 보수적인 정통파 신교를 믿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오직 정통파 개신교인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을 교황 요한 바오르 이세의 지도력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오직 천주교인(로마 카톨릭)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을 마키리오스 대주교나 쉐노다 교황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 한다면 희랍 정교나 콥트 교도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말장난은 마치 오리를 넓고 납작한 부리와 짧은 다리와 물갈퀴와 갈색 깃털을 가진 물새로 정의하고 물오리 암컷이나 숫컷은 깃털이 갈색이 아니므로 오리가 아니라고 우기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인간을 "남성"이나 "백인" 또는 "앵글로 색슨족"으로만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듯 바로 이런 식으로 말일성도나 깃털이 자신들의 깃털과 다른 교파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기독교를 교파적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깃털에 맞는 교파뿐만 아니라 모든 부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정의를 바꾸게 할 수는 없으나 이들이 배제를 목적으로 비표준적인 정의나 공공연하게 특정한 분류법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논리적 허위를 지적해 줄 수는 있다. 웨인 에이 믹스(WAHNE A. MEEKS)에 따르면 신흥 종교를 미신으로,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왕왕 비난했던 이교도들이 고대 기독교인을 배척하기 위해 이와 같은 용어정의 전략을 이용했다니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Gods)을 예배하므로 이러한 비난은 공정치 못한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박해자들은 기독교인이 신들(gods)을 섬기지 않으므로 즉 이교도 신들인 다신을 섬기지 않으므로 무신론자라고 몰아부쳤다. 무신론자를 이런 식으로 특정하게 정의를 내려 기독교인을 비난하고자 했던 의도는 기독교인은 이교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예배한다는 것이었으나 이와 같은 비난이 대중에게는 기독교인은 신을 믿지 않는 비종교인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물론 그렇게 의도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와 박해가 한결 더 손쉬어졌으며 기독교인이 공정하게 발언할 기회를 갖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말일성도의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말일성도를 비기독교인으로 매도하고 싶어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와 똑같은 계략을 말일성도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말일성도를 포함한 다른 교파를 배제함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구세주임을 믿고 구약과 신약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믿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면 분명 몰몬은 기독교인이다. 말일성도가 이 모든 명제를 입증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문제다. 비록 말일성도가 교리상의 해석에서 다르다 할지라도(즉 다른 기독교인과는 깃털의 색이 다르다 할지라도)말일성도들은 근본적으로 분류학적인 유사성을 공유한다. 반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교파적으로 정의되어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사람"을 뜻한다면 이 문제의 교파는(교파적이며 비표준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몰몬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 모든 진술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몰몬은 침례교인가 오순절 교인이나 다른 교파의 교인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이런 경우의 비난은 배척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정의를 사용한다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편의에 맞추어 정의를 내린다면 몰몬에 대한 비난은 하찮고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 비난은 말일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안믿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신이 믿는 교파에 상관없이 일반 "기독교인" 독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단어의 정의로 배제하는 사람들은 보통 말일성도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신교 정통파만을 뜻하기 위해 비표준적인 방법으로 정의된다면 말일성도는 분명 제외되지만 로마 카톨릭(천주교)과 희랍 정교 및 대다수의 신교-깃털 색이 다른 모든 오리-도 배제된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신교파가 적용하는 똑같은 배제가 팻 로벗슨, 로버트 슐러와 오랄 로버츠 등과 같이 편협한 종파적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복음 전도자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최근에 이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를 이루는 가족이란 대단히 적다. 그들이 정의하는 기독교인이란 "참된 교회에 속한 교인[우리 교회]"이거나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자"인 것이다. 자신의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확고하게 믿는 말일성도도 기독교인을 이와같이 편협한 방법으로 정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은 본인이 동부에서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에게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성직자 중 한 사람이 몰몬은 기독교인 아니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인이 말한 모든 것이 가치없는 것이라고 계속 주장 하였다. 청중 가운데 천주교 사제가 있다는걸 알고는 그 성직자에게 천주교인은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다. 그는 천주교인은 "구원받았다"는 경험 하나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천주교의 성사를 통한 구원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청중 가운데 그리스 정교회 사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저자는 그에게 동방 교회는 기독교인지 물었다. 성직자는 "그들이 기독교인이 믿는 것을 믿는다면"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정통 신교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보 신교는 기독교인지 아닌지 물었다. "절대 아니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의를 배신한자들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많은 성직자들이 처음에는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성직자의 말에 동의했을는지 모르나 똑같은 근거와 이유에서 나온 이 똑같은 비난이 자신들에게도 퍼부어지자 분노하게 되었다. 사실 이 성직자가 뜻했던 바는 다름이 아니라 몰몬과 천주교, 희랍 정교, 진보파 신교는 한결같이 정통 신교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 뒤에 숨어있는 명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대로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에 근거를 둔 숨겨진 명제와 논리가 다른 기독교파에 사용될 수 없다면 말일성도에게도 사용될 수 없다. 정통신교와 다른 종파는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정의할 수는 있다. 나머지 기독교 세계가 그러한 정의가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나오는 "몰몬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는 주장이 단순히 몰몬은 그들과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을 전 세계에서 유일한 진짜 기독교인으로 정의하고 나머지 기독교파를 배척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동의에 의한 기독교 비기독교적이라는 용어를 기독교 가족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고, 가르치지 않고, 믿지 않는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주장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먼저 이런 주장은 문제점을 증명하지 않고 이론을 펴 나가는 꼴이다. 누가 "기독교인"인가 알아내기 위해 조사해 볼 수도 있는 기독교 가족의 일원으로 말일성도를 취급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예/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조사의 결과를 미리 추측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문제점을 증명하지 않고 이론을 펴 나가는 것은 시험해 보아야할 명제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에 있어서 명제는 "말일성도는 기독교인인가?"이다. 둘째, 신약은 바울이 일부 기독교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을(고린도 전서 3:1-2를 보라), 또는 어느 기독교인과도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을(고린도 후서 12:2-4) 확실히 알고 믿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성서에서 가르치지 않고 다른 기독교인들이 몰랐던 것을 알고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바울이 "비기독교인"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런식으로 기독교인을 특별하게 정의하는건 통하지 않는다. 신약성서 자체는 누가 제자이며 누가 제자가 아닌지에 대해 매우 편협한 견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도행전 18:24-28에는 "주의 도를 배웠으나" 불완전하게 배운 아볼로에 대한 기사가 나와있다. 아볼로는 비록 말을 잘하기는 했지만 아길라와 프리실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완벽하게 자세히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가 가르친 교리에는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교리가 바로 교정되기 전에 비기독교인으로 간주되었다는 암시가 없다. 이와 유사하게 바울은 에베소 근처의 "어떤 제자들"이 불완전하게 복음을 배웠음을 알고는 그들에게 다시 침례 주겠다고 작정한다(행19:1-7). 그들이 비록 배운 바가 불완전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교리적인 면에서 더 발전해야 했지만 그들은 아볼로처럼 제자로 불리웠다. 고린도의 기독교인들은 성숙지 못해서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깊은 교리를 전혀 가르 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성도로 불렀다(골전3:2: 1:2). 바울의 서신은 모세 율법이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기독교 교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1:20에서 야고보는 바울에게 "형제여 그대도 보는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오히러 야고보는 바울에게 유대 기독교인들의 민감함을 가라앉혀줄 섭외활동 방법을 제안해 주었다(행21:23-24). 비록 그들의 교리에 결함이 있기는 했으나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그들을 믿는자"로 간주해 아량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그들과 교제하기까지 했다. 자비의 옹호자인 바울 자신이 자신의 교리와 상층되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면, 교리가 서로 다른 모든 현대 기독교파들은 교리상의 차이를 갖는 교인들에게 비기독교인이란 낙인을 찍는데 신중해야 되지 않을까? 요 약 요약해 보자면 말일성도가 기독교인 아니라는 비난은 말일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나, 말일성도가 신약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문제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표준 영어에서 사용되듯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란 용어가 특정한 교파의 견해에 따라 그리스도나 신약성서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교파적인 의미에서 사용된다면 이 비난은 하잘 것 없으며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정의는 말일성도가 이런 비난을 하는 교파와 견해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후자의 의미로 기독교인을 정의 하는 자들은 몰몬 뿐만 아니라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든 없든 그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라도 배척한다. 따라서 이런 편협한 공론가가 아니라면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와 관련된 논리상의 허위를 감지해 낼 수 있어야 한다.
2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
간략히 말하자면 허위제시에 의한 배제란 말일성도들이 믿지 않는 것을 놓고 말일성도를 비난하려는 시도다. 미합중국의 헌법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믿고 예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한다. 어떤 단체나 개인도 자신들이 교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수 있는 권리는 없다. 이 기본적인 자유의 당연한 결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교회나 종교도 그들이 믿는 교리를 그들의 목적을 위해 정의하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감리교인은 감리교인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면 침례교인은 침례교인이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므로 감리교회의 교리는 감리교인 자신들이 결정하는 것이지 다른 교파 사람들이 감리교인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적몰몬의 마음을 가진 독자들 그렇지만 말일성도에게는 자신들의 교리를 정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이 기본적인 특권이 거부되어왔다. 종종 자신이 믿는 신조를 비몰몬에게 설명할려는 말일성도는 "아니냐, 그게 당신네들이 믿는게 아니야: 이게 바로 당신네가 믿는 거야" 라고 말하는 자칭 전문가의 방해를 받는다. 그런 다음 이 자칭 전문가들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가르치지 않는 엉터리 교리를 일사천리로 낭송하는게 보통이다. 이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나 나는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나는 당신 생각를 당신보다 더 잘 알아!"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저자는 직업생활에서 "미안합니다만 그건 제가 믿는게 아닌데요"라고 말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러면 아니다 다를까 정말로 개인적으로는 은밀하게 "나도 그것을 믿지요"라고 말하는 일부 적대자들에 의해 본인의 말이 강력하게 확인된다. "내말은 내가 책임집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에 관한한 본인은 세계적인 권위자지요 그런데당신이 내가 믿느다고 말한 교리를 나는 믿어본 적이 없소"라고 내가 대답하면 보통 이러한 내 쪽의 선언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미 마음 속에 무엇이 나의 개인적인 믿음인지 무엇이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믿음인지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부정하는 어떠한 간증도 이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 자신의 믿음을 정의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몰몬 교리는 몰몬보다는 비몰몬들이 더 잘 이해하고 더 권위있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건 결코 내가 믿어온 것도, 내 교회가 믿어온 것도 아니오"라고 말하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말일성도 앞에서도 그들은 적몰몬들이쓴 팜플렛이나 성직자의 말을 더 믿으려 한다. 사실 세상의 어떠한 말일성도도 교리로 가르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터무니없는 엉터리 교리를 말일성도들이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종종 적물몬들의 신조가 된다. 몰몬의 교리는 몰몬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몰몬의 적들이 몰몬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적몰몬들이 말일성도에게 교리를 강요하거나 말일성도를 대신해 교리를 해석하려고 할때 생겨나는 허구는 보통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해 볼수 있다: (1) 과감한 조작. (2) 진짜 몰몬 교리를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왜곡. (3) 말일성도 전통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변칙(anomaly)을 마치 말일성도 공식 교리인냥 나타내 보임 조 작 프락토 앤 갬블(Proctor & Gamble) 회사가 겪었던 한 가지 경험이 본 주제인 과감한 조작에 대한 약간의 배경이 될 수 있다. 극단적인 종교의 가장자리 그 어디에선가 비누 회사인 프락토 앤 갬블은 사탄 숭배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 회사의 모든 이득은 사탄의 교회로 돌아간다는 루머가 1980대 초기에 시작되었다. 분명 일부 "기독교인"들이 달과 13개의 별에 있는 남자가 13개의 식민지를 숭배하는 것을 보여주는 회사의 상표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를 사탄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윽고 이 회사의 죄악을 상세하게 다룬 삐라가 전구에 배포되었으며 이 이야기가 퍼지자 루머가 확산되었다. 결국에는 사탄의교회가 회사 전체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회사 중역이 도나후 대담쇼"에 출연해 회사가 사탄 숭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토론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종교적인 광신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고 인식한 프락토 앤 갬블 회사는 맞서 싸웠다. 그렇게 터무니 없고 그렇게 쉽게 퍼진 루머 따위는 쉽사리 잠재울 수 있다고 생각한 회사는 무료 대중 전화를 가설하고 누가 그런 거짓말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알기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였다. 여러 주에서 거짓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자를 유포한 사람들이 고발되었다. 회사는 피해를 입은 지역의 성직자들에게 소문이 거짓임을 입증해 주는 빌리 그래함, 제리 팔웰, 남부 침례 교회의 지미 드레이퍼, 그리고 신시메티의천주고 대주교인 죠셉의 성명서가 담긴 회사 홍보 자료를 보냈다. 도나후 대담쇼 담당자들은 프락토 앤 갬블 회사의 어떤 관계자들도 자신들의 쑈에 출연한 적이 없으며 도나후는 이와 관련한 대담 쇼를 결코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모든게 허사로 돌아갔다. 프락토 앤 갬블이 대항해 싸웠던 극단적인 종교인들은 이 모순된 증거의 질이나 양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이 무엇이든지 믿었고 이를 배포하였다. 진리를 알아내는 것 보다 그들에겐 공격대상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결국 몇 년 동안 법과 홍보를 동원해싸우던 미국내 굴지 회사인 프락토 앤 갬블은 백기를 들 수 밖원하는 것이면 에 없었으며 결국 상표를 없애야만 되었다. 극단적인 종교인들의 완고하고 의도적인 조작을 막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지는 이렇다. 비누 회사 같이 전혀 무해한 단체가 비합리적인 종교단체에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계속적인 거짓 유포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말일성도들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까? 말일성도와 말일성도의 믿음에 대해 가장 잔인하게 조작하고 유포한 점은 프락토 앤 갬블을 공격했던 점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변호사나 사립탐정을 고용하지도 않는다. 조작과 대항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편지나 홍보도 하지 않는다. 말일성도들은 자신들의 진짜 믿음을 듣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묵묵히가르칠 뿐이다. 불행히고 프락토 앤 갬블 사건과 같은 내용에 말려들지 않을 만한 지식인도말일성도를 매도한는 책자들이 쓰여지면 이 무지막지한 책자의 내용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의 가족이 펜실베니아에 살고 있었던 1983년 어느날 그 당시 열 살이었던 딸 쎄라가 눈에 띄게 흥분된 채 학교에서 돌아왔다. 수업시간에 초기 몰몬 개척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선생님이 몰몬에 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어느 누구든지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쎄라가 응답하기 전 반 아이 하나가 "우리 아바지가 그러는데 몰몬은 유타에 살며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래요"라고 말했다. 쎄라는 재빨리 대꾸하였다. "나도 몰몬이데 우리는 우상를 숭배하지 않아." 그러나 선생님은 쎄라의 말을 지지해 주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반 아이들은 쎄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는 자신들이 다니는 교회 주일학교에서 몰몬은 우상이나 요셉스미스를 숭배한다고 이미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살아있는 말일성도의 개인적인 간증이 잘 알려진 적몰몬의 조작 내용에 따라 거부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진상을 접할 때 중세와 중세 이후 유대인의 믿음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취했던 태도가 생각난다. 유대인이 뭐라고 말했든지, 증거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비밀 의식에서 사람의 신체를 절단하고 있으며 기독교 어린이들을 살해하고 있다고주장했다. 이와같은 조작들로말미암아 수세기에 걸쳐 수천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유대인의 믿음과풍습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이와 같은 견해가 사실은 진짜 유대인들의 믿음과 풍습과는 전혀 무관한대도 유명한 기독교 믿음이 되어 버렸다.
왜 곡 조작과 가까운 친척은 왜곡이다. 왜곡은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점에서는 조작과 같지만 말일성도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교리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는 조작과 다르다. 그러나 조작에 의한 배제와 마찬가지로 왜곡에 의한 배제도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비록 왜곡된 교리가 실제 말일성도의 교리와 비슷하다 할지라도 말일성도들이 믿고 있지 않는 믿음 때문에 말일성도들이 논리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비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그들 자신의 교리는 그들 자신들이 말하게 하자 저자가 막 대학원을 마쳤을 때 전공 분야가 아닌 천주교에 대한 강의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동료 교수들은 몰몬이 감리교회 대학에서 천주교를 강의하는 것 보다 더 초 교파적인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또 실제로 이 경험은 본인의 직장 경험 가장 보상이 큰 경험이 되었다. 여러 해 동안 비 천주교인이 천주교회를 본인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실제로 천주교 신학자가 설명하는 천주교도의 믿음에대한 책자를 읽었다. 나는 카톨릭이 내가 배워 온 그런 종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강의에서는 "nihil obstat" 또는"imprimatur"라고 명시된 책만을, 즉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책만을 보도록 지명하고 또 이 책들만을 사용했다. 본인은 날마다 학생들과 함께 배워 나갔으며 한때 본인이 천주교회의 교리의 일부로 잘못 알았던 왜곡되고 거짓된 교리를 버리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인하여 어떤 종교든 자신들이 피력하고 자신들이 믿는 교리를 설명하도록 허용되어져야 하며 다른 모두에게도 똑같은 특권이 주어져아 한다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말일성도를 비판하려면 적개심을 가진 비평가들이 말일성도의 교리라고 여기거나 말일성도 대신에 그들이 해석하는 말일성도의교리가 아니라 말일성도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교리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 말일성도를 비판하려면 적개심을 가진 비평가들이 말일성도의 교리라고 여기거나 말일성도 대신에 그들이 해석하는 말일성도의교리가 아니라 말일성도들이 실제로 믿고있는 교리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 만약 말일성도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믿거나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을 숭배한다면 당연히 말일성도는 비기독교인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몰몬이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안으면 몰몬의 적들이 몰몬들이 그러한 교리를 믿고 있다고 하는 것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분명 논리적인 구도자라면 몰몬이 믿지 않는 교리를 근거로 말일성도를 논리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비기도교인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무엇이 공식교리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몰몬의 참된 교리란 말인가? 무엇이 말일성도의 "nihil obstat"이며 "imprimatur"일까? 말일성도들의 진짜 믿음은 무엇일까?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어느 몰몬들이라도 믿고 있는 것이 있다면 모두 "몰몬"교리로 간주될 수 있을까? 만약 말일성도였던 본인의 할머니가 개구리가 사마귀를 생기게 한다고 믿었거나 지구가 평평하다고믿었다면 할머니의 그러한 믿음이 말일성도의 교리가 될 수 있을까? 어떤 말일성도 선교사가 지구는 속이 비어있으며 잃어버린 열 지파가 지구속에 숨었다고 믿는다면 그의 믿음이 말일성도 교리가 될까? 물론 그렇지 않다. 결국 모든 종교는 교회의 공식 교리와 교회 구성원의 개개인이 믿는 믿음을 구분해내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 사실 몰몬교의 절차는 많은 개신교의 절차와 매우 흡사하다. 이 절차의 한 예는 1880년 10월10일 말일성도 교회의 50차 반 연차대회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 대회에서 죠지 큐 캐논 부 대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인의 손에는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있는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가 들려있습니다. 커틀랜드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최초의 교리와 성약을 투표에 붙이기 위해 교회 역원과 회원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초판에는 들어있지 않았던 계시를 출판하므로써 초판에첨가되었으므로 본 대회에서 본 책과 책의 내용를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를 한 백성과 한 교회로 결속하는지 아닌지를 거수지지를 통하여 결정할 목적으로 본 대회에 책들을 내놓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이후 교회가 가지고 있는 표준 경전의 내용이 변경될 때마다 비슷한 방법으로 회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연차대회에서 회원들에게 제시되었다. 교회의 교리로 모든 교회 회원들에게 공식적인 구속력을 갖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바로 회원 개개인이나 회원을 대표하는 역원들의 지지 투표인 것이다. 윌포드 우드럽 대관장이 회원들에게 복수 결혼을 중지하라고 명했을 때 그의 공식 선언은 1890년 10월 6일 교회의 60차 반 연차 대회에 제출되었으며 본 대회에서 이 선언문을 권위적이며 구속력을 갖는 것으로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이 선언문을 교회의 공식 교리로 만든 것은 바로 이 투표였던 것이다(교리와 성약에 공식 선언문-1로 인쇄되어 나온다. 킴볼 대관장이 1978년에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를 받아 모든 합당한 남자에게 신권이 주어질 수 있다는 선포를 했을 때 이 선언문은 1978년 9월 30일 연차대회에서 지지를 받아 공식 선언문-2가 되었다. 말일성도 교회의 총관리 역원이었던 비 에이치 로버츠도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교회는 세상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들이 기꺼이 구속력을 갖도록 해주면서 교회가 공식적으로인정하는 교리의 원천을 한정해 왔습니다. 여기에는 성경, 몰몬경, 그리고 교리와 성약과 값진 진주가 포함됩니다. 이 경전들은 거듭하여 대회에 참석한 교회회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졌으며 지지되어왔습니다. 따라서 이 경전들은 우리가 절대적으로의지해야할 교리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물론 책과 기사를 쓸 수 있는 교회의 대관장과 십이사도에서 부터 회원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교리적인 문제에 관해 개인적인 의사를 피력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견해들이 연차대회에제출되어 회원들의 지지를 받기 전까지는 구속력도 없으며 교회의 공식 교리도 아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교리를 배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중대한 차이를 거의 구분하지 않고 있다. 만약 말일성도 한 사람이, 그것도 저명한 교회 역원 중의 한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 말했다면 이 비평가들은 이 특정한 진술이 주어진 상황이나 다른 말일성도들도 이것을 말했거나 믿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몰몬의 교리인냥 취급해 버린다. 종종 말일성도 자신들도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표준 경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 새로운 교리를 찾아 이것이 마치 몰몬의 탈무드나 되는냥 강연록(Journal of Discourses)을 뒤적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비평가들은 말일성도는 요셉스미스와 브리감 영이나 다른 총관리역원들이 언급한 것이면 모든 것을 교리로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리에 대한 말일성도의 생각을 그렇게 지나치게 늘릴 수 없다. 말일성도는 살아있는 예언자가 때로는 예언자로서 말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개인적인 견해를 진술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다른 기독교의 차이와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비록 천주교인이 "교황 무류설"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교황이 분명하게 정의된 특정한 상황, 즉 그가 신앙과 도덕적인 문제에 관하여 권위를 가지고 말할 때만 완벽하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말일성도들도 비슷한 구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일성도의 견해는 요셉 스미스 자신이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예언자란 예언자로 행동할 때만 예언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 반면 반몰몬 비평가들은 종종 교회의 예언자들은 항상 예언자로 말하고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이와같은 절대주의자적인 기대는 일반적으로 비평가들이 가지고 있는 예언과 경전에 대한 극단적인 완벽함을 기대하는 견해로부터 나온다. 성경이 글자 하나 하나 완벽하며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는 비평가들의믿음 때문에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요구를 하게 된 것이다. 비평가들의 이 말일성도와 예언자들에게도 완벽한 견해를 강요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말일성도들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경전과 예언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경전은 올바로 번역되는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언자들은 때론 하나님을 대변해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말일성도가 완벽주의자들이라면 앞에 말한 것과 같은 견해는 분명 모순이겠으나 말일성도들은 완벽주의자들이 아니므로 이러한 견해는 완벽주의자들만 속타게 만든다. 비 에이치 로버츠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리문제는 요셉 스미스나 브리감 영으로부터 나왔다고하는 말을 인용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 교회회원들도 이 문제에 있어 교육과 교정을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총관리 역원들 중에서도 "그렇지만 요셉 스미스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 거나 "브리감 영이 그것을 가르쳤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셨느냐 아니면 예언자가 그것을 공적으로 말했느냐에 있습니다. 심지어 저명한 역원들의 출판물에 관하여서도 똑같은원리가 적용됩니다. 이 출판물들이 교리에 대한 최후의 공소법정은 아닙니다. 이 출판물들이 설명하는 방법이 유용하거나 가르치는교리가 매우 좋거나 건전할 수 있으나 교회 교리의 궁극적인 원천도 아니며 교회에 구속력을 갖지도 못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만이 교리이며 이 교리만이 우리에게 구속력을 갖는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종종 말일성도들은 반몰몬 비평가들을 대할 때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방어해야할 의무를 느낀다. 예를 들면 올슨 프랫이 이러 저러한 경우에 대해서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었다고 해서 그의 말을 방어 해야할 필오는 없다. 올슨 프랫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하였고 어떤 의견은 다른 총관리 역원의 의견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종종 그는 자신의 견해가 교회의 교리가 안닌 자기 자신의 견해라는 것을 청중이나 독자에게 분명히 밝히라는 훈계를 자주 받았다. 한번은 교회 대관장이 그가 교리로 나타낸 의견을 공중 앞에서 철회하라고 훈계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하여 올슨 프랫과 다른 사람들의 사견이나 심지어는 반 농담으로 한 말 조차 반몰몬들의 책자에서는몰몬의핵심 교리로 다루어진다. 더욱이 이와같읕 차이점을 이해하기 못하고 과거 지도자들의 사견이나 생각들을 마치 교회의 공식 교리인냥 가르치는 일부 말일성도에 의해 문제는 증폭된다. 물론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이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내의 행정 문제에 있어서 총관리 역원들이 영감을 못 받는다거나 총관리 역원들이 모든 정책을 회원들에게 투표로 물어보기위해 대회에 내놓아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미 교회가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교리와 성약에 기록된 계시들은 마치 주님께서 인간 개개인의 결정을 도와주실 때 지지투표 없이도 일을 하듯이 총관리 역원의 직책에 대한 성임과 더불어 이 총관리 역원들에게 교회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열쇠와 권능을 준다. 그러므로 교회는 총회에 열쇠를 쥐고 있는 개개인을 지지할 뿐 그들이 하는 일을 세부적으로 하나 하나 지지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교회의 정책과 절차는 그러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공적인 것이라고 선포하면 "공적인"것이며 "영감적인"것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교회가 이미 받아들인 계시는 총관리역원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설명하고 권고할 수 있는" 권리, 즉 그들이 맡은 개인적인 청지기 직분 안에서 기존의 교리를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대관장단과 십이사도는 총회에서 예언자요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