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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산

 
 

소개

이 책의 주요 메시지는 설립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에서 가르쳐 온 메시지이다. 이 경륜의 시대의 첫번째 선지자인 조셉 스미스는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 종교의 근본 원리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 곧 그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간증이며, 우리 종교에 대한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이 원리에 부수되는 것입니다.”1

조셉 스미스를 이은 모든 선지자는 구주의 거룩한 사명에 관해 개인적인 간증을 덧붙여 왔다. 제일회장단은 이렇게 밝혔다.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전하도록 부름 받고 성임 받은 사람들인 우리는 그분이 거의 2천년 전 그 부활절 아침에 부활하셨으며, 그분이 오늘날에도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그분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영광되고 불사 불멸하는 육신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구주이며,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십니다.”2

수백 만의 충실한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한 분이시라는 간증을 해 왔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지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왕국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희생을 할 수 있었다. 교회의 설립에 관한 이야기는 곧 신앙과 헌신과 기쁨의 이야기이다. 또한 현대의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들을 가르친 살아 계신 선지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을 갈구했고 그것을 발견하자 마자 구주의 제자가 되기 위해 어떤 희생이든 기꺼이 감내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용감한 성도들은 수많은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해 나아가는 가운데, 가장 암울한 시기에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기쁨을 증거했다. 그들은 신앙과 용기와 순종과 희생의 유산을 남겼다.

신앙의 유산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후기성도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현대의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 곳에서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가득한 시대에 신앙과 용기를 갖고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신앙의 이야기들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자 여러 세대가 이어받게 될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 바로 이 유산을 통해 앞으로의 세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생활하고 그 복음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가신 분들의 신앙에 대해 더 많이 배움으로써 구주에 대해 증거하고 그분의 왕국을 세우는 일을 돕는 데 있어서 같은 마음으로 참여했던 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로서 보다 의롭게 생활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도 있다.

 


첫번째 시현

 

회복의 필요성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망한 후, 신권의 권세와 많은 복음 진리들이 지상에서 거두어졌으며, 이에 따라 대배도라고 하는 오랜 영적인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선지자 아모스는 이미 이러한 영적인 암흑 상태인 배도를 예견하고 주님께서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라고 하신 때가 이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오랜 배도 기간 동안, 많은 정직한 사람들은 충만한 복음 진리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 많은 종파의 성직자들은 서로 다른 내용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에게 참여하도록 권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직한 의도를 갖고 있기는 했지만, 충만한 진리나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복음과 신권의 권세가 언젠가 지상에 회복될 것이며, 이후로 다시는 거두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비로운 약속을 주셨다. 19세기가 시작하면서 그분의 약속은 거의 성취되어가고, 배도의 긴 밤이 끝나게 될 순간이 다가왔다.

 

어린 조셉 스미스의 용기

1800년대 초, 조셉 스미스와 루시 맥 스미스의 가족은 미국 햄프셔 주 레바논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힘든 노동으로 근근이 생활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다섯째 자녀인 조셉 스미스 2세는 일곱 살 때에 뉴 잉글랜드 지역에서 3천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던 전염병인 장티푸스 질환을 앓았으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는 동안에 왼쪽 다리 뼈의 골수에 심한 감염이 되어 3주 이상이나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었다.

그 지방의 외과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조셉의 어머니의 완강한 거부로 다른 의사를 불러오게 되었다. 인근의 다트마우스 대학의 내과 의사인 네이던 스미스가 뼈 조직의 일부를 절개해 내는 비교적 새로우면서도 극한 고통을 수반하는 치료법을 사용해서 다리를 고쳐 보기로 했다. 의사는 이 소년을 묶기 위해 끈을 가져 왔으나 조셉은 끈으로 묶지 않고 견디어 보겠다며 반대했다. 또 그는 그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마취제 역할을 해줄 브랜디를 한 잔 마시라는 의사의 권유도 거절하고 그저 수술을 받는 동안 팔만 잡아 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조셉은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수술을 잘 견뎌냈으며,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지식이 많은 내과 의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미스 박사는 조셉의 다리를 구할 수 있었다. 조셉은 수술 받기 전까지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으나 이제는 아무런 통증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조셉이 수술을 받은 후, 스미스 가족은 버몬트 주 노르위치로 이사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3년 연속 농작물의 흉작으로 고통을 겪다가 뉴욕 주 팔마이라로 이사했다.

 

첫번째 시현

청소년이 된 조셉 스미스는 가족을 도와 토지를 개간하고 바윗돌들을 나르는 등 다른 많은 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인 루시는 소년 조셉이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었으며, 종종 자신의 불멸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곤 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특별히 팔마이라 지역에서 전도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 가운데 어떤 교회가 올바른 교회인가를 놓고 고민하곤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대 혼란기에 있어서 나의 마음은 진지한 반성과 커다란 불안감에 사로잡혔었습니다. 나의 감정은 이에 대하여 깊고 예리한 관심을 가졌었으나 나는 이 모든 종파에서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회 있는 대로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때가 지남에 따라 감리교파에 마음을 두고 어느 정도 이에 가입하고 싶었으나 혼란과 서로 다른 종파간의 분쟁이 너무도 컸으므로 나 같은 세상 일에 미숙한 소년에게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이들 종교가들이 일으킨 커다란 혼란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루는 야고보서 1장 5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성경의 어느 구절도 이 때의 이 글처럼 나의 마음속에 힘있게 임한 일은 없었습니다. 참으로 강한 힘이 나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것을 여러 번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자가 있다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내 지혜보다 더 깊은 지혜 없이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여러 교파의 교사들이 같은 성경 구절을 여러 가지로 각각 다르게 해석하여 그 결과 성경에 의해서 의문을 해결하려는 신념을 가질 수 없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는 암흑과 혼돈 속에 머무르든가 야고보가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께 간구하든가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8, 11~13)

1820년의 어느 아름다운 봄날 아침, 조셉 스미스는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숲 속에 혼자 들어가 무릎을 꿇고 마음에 갖고 있던 소망을 하나님께 의뢰하며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렇게 기도하자마자 나는 어떤 힘에 의하여 완전히 사로잡혔으며 놀라운 힘에 압도되어 저항력을 잃고 혀가 굳어 버려서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캄캄한 어두움이 나를 둘러 쌓았으며, 한동안은 내가 이대로 곧 죽어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15)

모든 의의 적대자인 사탄은 조셉이 매우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파멸시키려고 했으나, 조셉은 그의 모든 힘을 기울여 하나님께 의지하였으며 즉시 구원되었다.

“바로 이 때 매우 놀라운 순간 나의 머리 바로 위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 기둥을 보았으며, 그 빛기둥은 머리 위로 점점 내려와 드디어 그 빛은 나를 비쳤습니다.

“이 빛기둥이 나타나자마자 나는 나를 결박했던 힘으로부터 풀려났음을 깨달았으며, 그 빛이 내 위에 머물렀을 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두 분이 내 위 공중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하셨습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16~17)

조셉은 정신이 들자마자 어느 교파가 옳으며 어느 곳에 가입해야 할지를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은 “아무 교파에도 속하지 말라.… 모든 교파가 다 그르며 그들의 신조는 하나님 앞에 가증하… 도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척하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고 하셨다.(조셉 스미스 - 역사 2:19) 주님은 또한 조셉에게 더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셨다.

시현이 끝난 후 조셉은 자신이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점차 기운을 회복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1820년, 그날 아침의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만 해도, 조셉 스미스는 선지자가 이 지상에 다시 존재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뉴욕 주 서부의 한 비천한 집안의 소년이었던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회복하는 기이한 업적을 수행하도록 택함 받게 된 것이었다. 그는 거룩한 두 분을 보았으며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속성에 관해 증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날 아침은 참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한 날이었으며, 빛이 숲 속을 가득 채웠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14세된 소년을 선지자로 부르셨다.

 


교회의 기초를 세움

 

몰몬경의 출현

 

천사 모로나이의 방문

첫번째 시현을 본 지 3년이 지난 1823년 9월 21일 저녁, 조셉 스미스는 주님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가운데 더 지시를 해주실 것을 간청했다. 주님은 그에게 지시를 해줄 하늘의 사자를 보내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조셉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 분은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내게 보내진 천사 모로나이임을 밝히고 하나님께서 내게 시키실 일이 있다는 것을 전하였으며 나의 이름이 온 나라와 민족과 방언의 백성들에게 좋게도 전하여 지고 나쁘게도 전하여 지며 온 나라와 민족과 방언의 백성들의 입에 좋게도 오르내리며 나쁘게도 오르내리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분은 이 대륙에 먼저 살았던 백성들의 기사와 그들이 어디서 왔는가에 관한 기사가 금판에 기록된 책이 묻혀 있다고 전하면서 이 책에 구주께서 친히 고대 주님들에게 전하신 바 온전한 복음이 또한 적혀 있다고 하였습니다.” (조셉 스미스 - 역사 2:33~34)

모로나이는 이 고대의 기록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선지자로서 주님의 지시로 쿠모라 언덕에 그 기록을 묻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우림과 둠밈도 함께 묻었는데, 이 우림과 둠밈은 고대의 선지자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조셉도 기록을 번역할 때 사용했었다.

천사 모로나이는 조셉에게 근처에 있는 언덕으로 가라고 지시했으며, 말일의 주님의 사업에 관한 많은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조셉에게 기록된 판들을 갖게 되더라도 주님께서 특별히 명하시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모로나이는 그날 밤 동안에 두 차례 더 조셉에게 돌아왔으며 다음 날에도 한 차례 방문했다. 그는 매번 중요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했으며 다른 내용도 더 이야기해 주었다.

천사가 방문한 다음 날, 조셉은 지시 받은 대로 쿠모라 언덕으로 갔다. 그는 이 때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언덕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 바위 밑에 금판이 돌 상자 속에 담겨 묻혀 있었습니다. 이 돌은 두꺼웠고 중앙 부분으로 올수록 두껍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얇게 되어 있어서 그 중앙은 땅 위로 들어나 있지만 둘레는 모두 흙에 묻혀 있었습니다.

“나는 덮인 흙을 파헤쳐 내고 지렛대를 하나 얻어다가 돌 밑에 넣은 다음 조금 힘을 들여 그 돌을 옮겨 놓았고 그 안에는 정말로 천사가 이야기한 금판과 우림과 둠밈 그리고 가슴판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조셉 스미스 - 역사 2:51~52)

천사 모로나이가 나타나서 조셉에게 1년 후 같은 시각에 그 언덕으로 오되, 그 판들을 받을 시기가 될 때까지 매년 그렇게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모로나이는 방문할 때마다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이며 그분의 왕국이 어떤 모양으로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하여 더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27~54 참조)

 

번역 작업

4년 간의 준비기를 거친 뒤인 1827년 9월 22일, 모로나이는 선지자 조셉에게 금판을 주고 번역을 시작하라고 말했다. 그 해 초에 조셉과 결혼했던 에머 헤일은 그날 조셉을 동반해서 함께 갔다가 남편이 판을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쿠모라 언덕 기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 선지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중요한 보조자가 되었으며 얼마 안되는 기간 동안이긴 했지만 몰몬경 번역 업무의 서기로 일했다.

그 지방의 폭도들이 계속해서 끈질기게 금판을 훔치려고 했기 때문에 조셉과 에머는 뉴욕 주 만체스터에 있는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만체스터에서 남동쪽으로 약 120마일 가량 떨어진 펜실바니아 주 하모니에 살고 있던 에머의 아버지 아이삭 헤일의 집으로 피신했다. 그 곳에서 조셉은 판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조셉에게는 곧 마틴 해리스라는 친구가 생겼는데, 그는 유복한 농부였으며 그의 서기가 되었다.

마틴은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 일이라는 것을 그의 가족들에게 입증하기 위해 이미 번역된 116페이지의 자료를 집으로 가져 가서 보여 주면 안되겠느냐고 조셉에게 물었다. 조셉은 주님께 허가해 주실 것을 청했으나 주님은 안된다고 대답하셨다. 마틴은 다시 조셉에게 기도해 줄 것을 간청했으며, 이에 조셉은 마지못해 두 차례 더 청원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허락을 받았다. 마틴은 특정인에게만 그 원고를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으며, 결국 그가 가져 갔던 116페이지의 원고를 누군가가 훔쳐가 버렸다. 이 분실 사건으로 조셉은 매우 비통한 슬픔을 겪었다.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그의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나는 죄를 짓고 말았구나.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게 한 것은 나야. 하나님이 주신 첫번째 응답에 만족했어야 했어.”1

조셉이 진실로 회개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금판 및 우림과 둠밈을 거두어 가신 지 얼마 후에 그를 용서하여 주셨으며, 그는 다시 번역을 시작했다. 주님은 그에게 현세의 역사가 포함된 분실 부분을 재번역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대신 조셉은 선지자 니파이가 작성한 것으로서 동시대를 다루고 있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더 위대한 예언과 다른 거룩한 기록들을 담고 있는 다른 판을 번역해야 했다. 주님은 116페이지 분량이 분실될 것을 예견하시고 니파이에게 이 역사에 대해 다시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셨던 것이다.(니파이전서 9장, 교리와 성약 10:38~45 참조, 또한 이 시기에 받은 교리와 성약 3편과 10편도 참조)

이 때 조셉은 학교의 젊은 교사로서 주님의 인도를 받아 선지자의 집으로 온 올리버 카우드리의 도움을 받는 축복을 누렸다. 올리버는 1829년 4월 7일부터 서기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위대한 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가슴에 한량없는 감사를 일깨워 주신 하늘의 영감이 명하시는 바를 들으며 앉아 있었던 그 날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71 각주)

올리버는 또 이렇게 기술했다. “그 책은 참된 책이다.… 선지자가 불러 주면 내가 직접 그 내용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영원 불변한 복음이 포함되어 있으며, 요한이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천사가 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 계시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구원의 원리가 담겨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빛을 따라 걷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2

작업을 하던 중에 조셉과 올리버는 기록을 번역하느라 몰두했기 때문에 음식이나 돈이 모두 떨어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꼭 필요한 필기 도구마저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선지자의 전 고용주이자 친구인 조셉 나이트 1세가 그들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조셉 나이트는 그의 가장 시의 적절했던 도움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고등어 한 통과 줄이 그어진 글 쓸 종이 약간을 샀다.… 20말 정도의 곡식과 10말 정도의 감자도 샀다.” 그런 다음 그는 하모니에 있는 그 두 사람을 방문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조셉과 올리버는 부족한 식량과 재료를 구입할 돈을 벌기 위해 일할 곳을 찾아 나섰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러한 것들을 갖고 기다리는 나를 보았다. 그들은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몹시 기뻐했다.… 그런 뒤 그들은 또 작업을 하러 갔다. 이제 그들에게는 번역이 모두 끝날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충분히 있었다.”3

선지자 조셉이 이 의로운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다. “시온의 아들들은 단 한 사람만 남게 된다 해도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충실한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이름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4

박해가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조셉과 올리버는 하모니를 떠나서 뉴욕 주 페이에트에 있는 피터 휘트머의 농장에 머무르며 1829년 6월에 번역 작업을 마쳤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작업을 완료했다는 것은 참으로 현대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정식 교육이라고는 별로 받은 적이 없는 조셉 스미스가 2개월이 약간 넘는 정도의 실제 작업 기간 동안에 기록을 번역해서 구술했는데도 수정할 곳이 거의 없었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그가 번역했을 때 그대로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전세계 수백 만 명의 사람들에게 간증의 원천이 되었다. 조셉 스미스는 주님께서 말일의 성도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고대 선지자들의 기록을 세상에 나타낼 목적으로 손수 쓰신 유능한 도구였다.

 

몰몬경의 증인들

선지자 조셉 스미스가 페이에트에 있는 동안, 주님은 올리버 카우드리와 데이비드 휘트머와 마틴 해리스가 금판을 보도록 허락 받은 세 명의 특별한 증인이 될 것이라고 계시해 주셨다.(니파이후서 27:12, 이더서 5:2~4, 교리와 성약 17편) 그들은 조셉과 함께 이 고대 기록의 기원과 진실성에 관해 증거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 휘트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근처 숲 속으로 들어가 통나무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조셉도 기도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일어나서 다시 통나무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의 위에서 빛이 내려와 꽤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쌌다. 그리고 천사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이 천사는 모로나이였다. 데이비드는 그가 “하얀 옷을 입고 이야기했으며 나의 이름을 부르더니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했다. 우리 앞에 탁자가 놓여졌고 그 위에 기록들이 놓여졌다. 몰몬경에서 번역된 니파이 백성들에 관한 기록과 놋쇠판과 방향구와 레이밴의 검과 다른 판들이 있었다.”5 이 네 사람이 이러한 것들을 보고 있는 동안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 “이 여러 판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번역되었느니라. 너희들이 본 번역은 정확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가 지금 보고 들은 것을 간증할지어다.”6

이 사건이 있은 직후 조셉 스미스는 추가로 여덟 증인들에게 금판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뉴욕 주 만체스터에 있는 스미스 가족의 집 근처, 은밀한 장소에서 직접 금판을 만져보기까지 했다.

 

몰몬경으로 전도함

번역하는 일이 끝나자 선지자는 팔마이라의 에그버트 비 그랜딘 출판사와 몰몬경 출판에 대한 계약을 맺었다. 마틴 해리스는 몰몬경 5천 부를 출판하는 데 3,000달러를 지불하기로 하고 그랜딘 씨와 저당권 설정을 했다.

몰몬경 초판이 1830년 3월 26일, 이 비 그랜딘 서점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선을 보였다. 새로 출판된 몰몬경을 사용한 최초의 선교사 중에는 사뮤엘 스미스가 있었다. 그는 1830년 4월에 뉴욕 주 멘든 시내에 있던 톰린슨 여관을 방문했다. 그는 그 곳에서 브리감 영의 동생인 파인해스 영이라는 젊은이에게 몰몬경 한 권을 팔았다.

그는 6월에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 이번에는 뉴욕 주 블룸필드에 거주하는 존 피 그린의 집에 몰몬경 한 권을 두었다. 존은 브리감 영의 여동생인 로다 영과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 다음에는 브리감의 아버지인 존 영이 몰몬경을 접했으며, 그는 그 책을 집으로 가져가 끝까지 모두 읽었다. 그는 “이 책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책이며, 성경을 포함해 [내]가 본 어떤 것보다 오류가 없는 책이다.”7라고 말했다.

브리감 영은 가족 및 선교사들에 의해 몰몬경의 내용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철저하게 조사할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그 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까지 2년 동안 그 문제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나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거나 손가락으로 만져 보는 등 오감으로 무엇이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모든 것들을 증명해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8

브리감 영은 1832년 4월 14일에 침례를 받았다. 침례와 확인을 받은 다음의 일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구주의 말씀에 따라 겸손하고 순진 무구한 영을 느꼈다. 이 영을 통해 나는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9 그는 후에 사도가 되었으며, 결국에는 교회의 제2대 회장이 되었다.

 

아론 신권과 멜기세덱 신권의 회복

천사 모로나이는 1823년 9월에 쿠모라 언덕에서 조셉 스미스를 만났을 때, 그에게 신권의 권능이 지상에 회복될 것이라는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 가르침 중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판이] 번역되면 주님께서 몇 사람에게 거룩한 신권을 주실 것이요, 이들은 복음을 선포하고 물로써 침례를 베풀게 되리니, 이러한 연후에 이들은 손을 얹고 성신을 부여하는 권세를 갖게 되리라.”10

1829년 봄, 조셉은 이 천사가 한 말의 일부분을 실현시키는 데 참여했다. 그는 올리버 카우드리와 함께 몰몬경 번역 작업을 하던 중에 죄사함을 위한 침례에 관해 언급된 부분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5월 15일에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이 주제에 관한 지식을 더 주실 것을 간구했다. 사스케하나 강 둑에서 기도를 하는 동안, 하늘의 사자가 그들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신약 시대의 침례 요한이라고 소개하고, 조셉과 올리버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이렇게 말했다.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종들아, 나는 너희에게 메시야의 이름으로 아론 신권을 부여하노라. 이는 천사의 성역, 회개의 복음, 죄 사함을 위한 침수로써의 침례를 베푸는 열쇠를 가지고 있느니라.”(교리와 성약 13:1)

이렇게 성임 받고 난 뒤 조셉과 올리버는 침례 요한의 명에 따라 서로에게 침례를 주고 서로에게 아론 신권을 부여하였다.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론 신권은 성신의 은사를 주기 위하여 안수할 권능은 없으나 이러한 성신의 은사를 주는 권능은 후에 부여되리라.” 또한 “[그]는 멜기세덱 신권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자며 이 멜기세덱 신권도 때가 이르면 우리에게 부여될 것”(조셉 스미스 - 역사 2:70, 72; 2:68~72 참조)이라고 말했다.

선지자는 이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축복을 경험하였습니다. 내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침례를 주자마자 성신이 그의 위에 임하고 그는 일어서서 곧 일어날 여러가지 일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그에게서 침례를 받자 나에게도 예언의 영이 임하여 나는 일어나 이 교회의 일어남과 교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일들과 이 세대의 사람들에 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예언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성령에 충만하여 우리 구원의 하나님 앞에서 심히 기뻐하였습니다.”(조셉 스미스 - 역사 2:73)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조셉과 올리버에게 나타나 멜기세덱 신권을 부여해 주었다. 그들은 또한 조셉과 올리버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열쇠도 부여해 주었다.(교리와 성약 27:12~13, 128:20 참조) 멜기세덱 신권은 지상의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권능이다. 이 권능을 통해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이 경륜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조직하고 현재에도 교회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신권 정원회의 조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회의 조직

주님은 조셉 스미스에게 1830년 4월 6일이 이 경륜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조직되어야 할 날이라고 계시해 주셨다.(교리와 성약 20:1 참조) 신도들과 친구들에게 통보서가 전달되었으며, 약 56명의 남녀가 뉴욕 주 페이에트에 있는 피터 휘트머 1세의 통나무 집에 모였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으로 [미국]의 법률에 좇아” 조직하는 것을 도울 여섯 사람을 선택했다.(교리와 성약 20:1)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 아버지께 거룩한 기도를 드리면서 모임을 시작한 뒤 우리는 이전에 받은 계명에 따라,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사업을 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를 그들의 교사로 받아들일 것인지, 또 우리가 절차를 진행하여 이미 받은 명에 따라 교회를 조직해도 괜찮겠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순서를 가졌다. 이러한 몇 가지 제안에 대해 그들은 만장 일치로 찬성했다.”11

참석한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 조셉은 올리버를 교회의 장로로 성임했으며, 올리버는 선지자를 장로로 성임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시하신 것이었다. 성찬이 축복되고, 참석한 회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확인 의식을 받고 성신의 은사를 받았다.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성신이 대단할 정도로 쏟아부어졌다. 어떤 사람은 예언도 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을 찬양했으며 매우 기뻐했다.”12 이 모임 동안에 조셉은 주님으로부터 교회 회원들이 선지자의 말을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과 동일하게 여기고 따르라고 지시하시는 계시를 받았다.(교리와 성약 21:4~6 참조)

1830년의 그 모임에서 제시된 요소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즉 만장 일치, 찬송, 기도, 성찬을 취함, 개인적인 간증을 함께 나눔, 안수례에 의한 성신의 은사 부여, 성임, 개인적인 계시, 신권 역원들을 통한 계시 등의 율법이 실행되는 것이 그러한 것들이다.

조셉의 어머니인 루시 맥 스미스는 선지자의 아버지, 조셉 스미스 1세가 침례 받은 날 일어났던 부드러운 광경에 대해 이렇게 기록했다. “남편이 물에서 나오자, 조셉이 물가에 서 있다가 그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내 살아 있는 동안 부친이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로 들어오신 모습을 보았으니 나의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라고 외쳤다.”13 그 순간을 조셉 나이트 1세는 이렇게 말했다. “[선지자]는 극도로 성령에 충만해 있었다.… 그는 기쁨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이미 시작했던 위대한 사업을 보았으며 그 사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14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튼튼한 사랑의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후에 선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찬미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을 사랑한다. 이 고귀한 행위들에 대한 추억은 내 마음에 언제나 머물러 있으며, 그 분이 부성애를 갖고 나에게 해 주신 많은 친절한 말씀은 내 마음의 서책에 기록되어 있다.”15

선지자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사랑은 조셉 스미스 1세가 그의 부친인 에이샐 스미스에게 보여 준 행동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조셉 스미스 1세는 1830년 8월에 몰몬경 몇 권을 갖고 북동부의 뉴욕 주 세인트 로렌스 군으로 가서 그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에이샐 스미스는 1830년 10월에 임종할 때까지 몰몬경을 거의 모두 읽었으며, 그의 손자인 조셉 스미스 2세가 “자신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대로 자신의 가문에 나타날 바로 그 선지자”16라고 말했다. 나중에는 에이샐의 다른 세 아들인 사일라스, 존 및 에이샐 2세도 교회에 가입했다. 선지자는 자신의 직계 가족 모두와 많은 부계 친척들이 침례의 물에 침수되는 것을 지켜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후에 제일회장단의 일원이 된 시드니 리그돈은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는 미약했으나 당시 조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원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뉴욕 주 워털루 근처의 한 작고 조그만 통나무 집에서 그리스도의 교회 회원 모두를 만났다. 우리는 마치 세상이 우리의 손 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우리의 이야기에는 강한 확신이 배여 있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간증을 전혀 몰랐으며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려 하는가도 모르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시현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수천 배나 커지는 모습을 보았다.…”17

1830년 4월 6일 뉴욕 주 서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로 인해 수백 만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다. 처음 이 통나무 집에 모인 개종자들의 수는 매우 적었지만, 복음이 전세계로 퍼져 나감에 따라 지금은 많은 나라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 중에는 페이에트에서 교회가 처음 조직될 때처럼 비천한 환경에 처해 있는 곳도 있다. 전세계의 성도들은 구주의 다음과 같은 약속으로 인해 기뻐하고 위안을 얻는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보라, 저들 가운데 내가 함께 하겠노라”(교리와 성약 6:32)

 

“오하이오로 가라”: 말일의 이스라엘의 집합

콜스빌에서의 박해

교회가 조직된 바로 그 달에,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그와 절친한 조셉 나이트 1세의 가족들을 가르치기 위한 선교 사업을 떠났다. 그들은 뉴욕 주 콜스빌에 거주하고 있었다. 6월 28일에는 나이트 형제의 가족 및 친지들의 많은 수가 침례 성약을 맺을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콜스빌에서는 복음을 전도하는 것에 대해 강한 반대가 일었으며, 일단의 폭도는 형제들이 물을 보유할 목적으로 만들어 둔 제방을 부숴뜨려서 침례를 멈추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제방은 곧 보수되었다. 조셉 나이트 1세는 신앙의 적대자들이 자행한 일들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침례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많은 이웃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우리를 가리키면서 양을 목욕시켰느냐고 물었다.… 그날 밤 우리 집 마차가 전복되고 그 위로 목재가 쌓아올려졌으며, 울타리용 나무가 집 앞에 잔뜩 쌓여 있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물에도 잠겨 있었으며, 마구용 사슬이 개울물에 가라앉아 있는 등 많은 해를 입었다.”18

이와 동시에 복음 전도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선지자를 체포해 평화를 깨뜨렸다는 죄목으로 기소하여 그를 괴롭히려고 했다. 그러나 조셉 나이트 1세가 변호사들을 선임했으며, 이들 덕분에 선지자는 곧 무혐의로 풀려나게 되었다.

교회가 중요한 문제를 앞서 추진해 갈 때마다 모든 의의 적대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헌신적인 성도들은 강하게 단합했던 콜스빌의 성도들처럼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더욱 굳건하게 성장한다.

 

인디언들에 파송된 선교사들

1830년 9월과 10월에 걸쳐 네 명의 젊은이들이 계시를 통해 몰몬경 백성의 후손들인 미대륙 인디언들에게 복음과 몰몬경의 가르침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올리버 카우드리, 피터 휘트머 2세, 팔리 피 프랫 및 지브라 피터슨이 선교사들이었다.(교리와 성약 28:8, 30:5~6, 32편 참조) 이들은 매우 열악한 상태에서 수백 마일을 여행하여 뉴욕 주 버팔로 근처의 카테로구스 인디언들과 오하이오 주의 얀덧츠 인디언 및 마지막으로는 미주리 주 서부에 살고 있던 델라웨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와 인근 지역 정착민들에게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무려 127명을 개종시켰던 것이다. 선교사들이 떠난 후 오하이오 주의 성도들의 수는 곧 수백 명에 다다르게 되었다. 남아 있던 회원들의 전도 덕분이었다.

 

오하이오로 집합하라는 부름

전 성직자이자 커틀랜드 지역에서 새로 개종한 회원인 시드니 리그돈과 에드워드 패트리지라고 하는 비회원 친구 한 명은 선지자를 만나 교회의 가르침을 더 받기를 갈망하여, 1830년 12월에 250마일이 넘는 거리를 여행하여 뉴욕 주 페이에트까지 조셉 스미스를 만나러 왔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그들 자신과 커틀랜드 성도들과 관련하여 주님께서 어떤 뜻을 갖고 계시는지를 알아봐 달라고 청했다. 주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뉴욕 성도들이 “오하이오 주에 다같이 모일 필요가 있느니라.”(교리와 성약 37:3)라고 계시해 주셨다.

뉴욕 주에서 열린 교회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집회가 1831년 2월 2일에 휘트머의 농장에서 열렸을 때, 주님은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다시 한번 똑같은 지시를 내리셨다. “이는 너희가 원수의 권세에서 벗어나 흠 없고 허물 없는 의로운 백성을 내게로 모이게 하기 위함이니, 그런고로 이 대사를 위하여 오하이오로 가라는 명령을 너희에게 주었느니라. 또 그 곳에서 나의 율법을 너희에게 주리니, 높은 곳에서 임하는 능력을 받으리라.”(교리와 성약 38:31~32) 성도들에게 함께 모이라고 한 이 지시는 이 경륜의 시대에 첫번째로 내려진 부름이었다.

비록 몇몇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뉴욕 주에서 오하이오 주까지 긴 여행을 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스라엘을 집합시키라는 목자의 음성을 들었다. 뉴웰 나이트는 신권 지도자들을 따른 제자들의 대표격인 인물로서 그 부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콜스빌 지부의 성도들과 함께 이미 받은 계명에 순종하여 오하이오로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재산상으로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형제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19

조셉 나이트 1세 또한 오하이오 주에 있는 선지자와 합류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브룸 리퍼블리칸 지에 실은 짤막한 농장 매각 광고는 그가 복음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현재의 농장주 조셉 나이트, 콜스빌 읍내에 위치, 콜스빌 브릿지 근처에 있음.-한쪽으로 사스케하나 강이 흐름, 약 142에이커. 위 농장에 거주 가능 가옥 2채, 좋은 헛간 및 훌륭한 과수원 포함. 매각 조건 후함”20 1831년 4월 중순경, 콜스빌에서 오하이오로 길을 떠난 회원들은 68명이었다.

80여 명의 페이에트 지부 성도들과 50여 명의 맨체스터 지부 회원들도 주님의 지시에 똑같이 순종하여 1831년 5월초에 그들의 집을 떠났다. 선지자의 어머니인 루시 맥 스미스는 회원들이 페이에트에서의 대이동을 지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들이 뉴욕 주 버팔로에 도착했을 때는 에리 호가 얼음 벌판으로 변해 항구가 폐쇄되어 페이에트의 성도들을 실은 증기선이 항구를 떠날 수 없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루시 맥 스미스는 회원들에게 신앙을 행사해 주도록 요청했다. “자, 형제 자매 여러분, 얼음이 깨져서 주님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상태에 놓일 수 있도록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상달시킨다면, 그 소망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얼음이 깨지더니 배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 생겨난 것이었다. 겨우 겨우 빠져 나가는 동안 그 길은 다시 막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얼음이 얼지 않은 곳까지 나와 있었으며,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 기적과 같은 탈출을 한 성도들은 자비로써 그들을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기도 모임을 가졌다.21

5월 중순경, 뉴욕 주에서 온 모든 지부의 성도들은 배로 에리 호에서 오하이오 주의 페어포트 항까지 건너갈 수 있었으며, 이들은 이곳에서 다른 성도들을 만나 커틀랜드와 톰슨 군구의 목적지까지 안내되어 갔다. 이미 말일의 이스라엘의 대집합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제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종의 신분으로 가르침 받고 그분의 율법 안에서 지시 받으며 거룩한 성전들을 지을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

 

Notes

1. 루시 맥 스미스, 조셉 스미스의 역사(1958년), 128쪽

2. 루벤 밀러 일지, 1848~1849년, 1848년 10월 21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 역사부 공문서 보관과, 이후로는 후기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라고 인용함.

3. 딘 제시 편, “초기 몰몬의 역사에 대한 조셉 나이트의 회상”, 브리감 영 대학교 연구집, 1976년 가을호, 36쪽

4. 교회사, 5:124~125

5. 더 세인츠 헤럴드, 1882년 3월 1일, 68쪽

6. 교회사, 1:55

7. “브리감 영의 역사”, 밀레니얼 스타, 1863년 6월 6일, 361쪽

8. 브리감 영, 설교집, 3:91

9. “브리감 영의 역사”, 밀레니얼 스타, 1863년 7월 11일, 438쪽

10. “더블류 더블류 펠프스에게 보낸 올리버 카우드리의 편지”, 후기성도의 사자요 옹호자, 1835년 10월, 199쪽

11. 교회사, 1:78

12. 교회사, 1:78

13. 루시 맥 스미스, 조셉 스미스의 역사, 168쪽

14. 딘 제시 편, “초기 몰몬 역사에 대한 조셉 나이트의 회상”, 37쪽

15. 교회사, 5:126

16. 교회사, 2:443

17. “대회 의사록”, 타임즈 앤드 시즌스, 1844년 5월 1일, 522~523

18. 조셉 나이트 자전적 스켓치, 1862년; 후기성도 교회 기록 보관소

19. 뉴웰 나이트, 래리 포터의 “1816~1831년대의 뉴욕 주와 펜실바니아 주에서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기원에 대한 연구”(1971년 브리감 영 대학 박사 학위 논문), 296쪽에서 인용

20. 브룸 리퍼블리칸, 1831년 5월 5일, 래리 포터의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기원에 대한 연구”, 298~299쪽에서 인용

21. 루시 맥 스미스, 조셉 스미스의 역사, 204쪽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에서 왕국을 건설함

 

선지자의 오하이오 주 도착

1831년 2월의 어느 추운 날, 선지자 조셉 스미스와 당시 쌍둥이를 임신한 지 6개월 된 그의 아내 에머 스미스는 뉴욕 주에서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까지 장장 250마일이나 되는 거리의 여행을 마쳤다. 그들은 썰매 마차를 타고 길버트와 휘트니 상점에 도착했다. 다음 발췌문은 뉴웰 케이 휘트니와 선지자와의 만남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썰매 마차]에 타고 있던 남자 가운데 젊고 용감해 보이는 사람이 내리더니 계단들을 성큼 성큼 뛰어 올라가 상점 안으로 들어간 뒤 나이가 더 젊어 보이는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뉴웰 케이 휘트니씨! 당신이 바로 그 분이군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손을 내밀었다.

“‘잘 몰라 뵙겠는데, 누구신지요?’하고 그 사람이 상대의 내민 손을 무의식적으로 잡으면서 물었다. ‘저는 선생님의 성함을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선지자 조셉입니다. 당신이 이곳에서 기도하셨지요? 이제 제게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고 그 낯선 사람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1

사실 얼마 전에 뉴웰과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열렬한 기도로써 주님께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령이 임하고 구름이 그들의 집에 그림자를 드리우더니, 그 구름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하라. 그 말씀이 임할 것이니라!”라고 하는 한 음성이 들렸었다.2 그런 일이 있은 직후에 인디언들을 가르치도록 부름 받은 선교사들이 커틀랜드에 온 데다 이제는 선지자까지 도착한 것이다.

뉴웰의 손자인 올슨 에프 휘트니는 후에 이 사건에 대한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탁월한 분인 조셉 스미스는 어떤 능력이 있길래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알아보았을까? 왜 할아버지인 뉴웰 케이 휘트니는 그 분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것은 바로 조셉 스미스가 선견자, 그것도 훌륭한 선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커틀랜드로 오는 문제에 대해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중에 할아버지인 뉴웰 케이 휘트니를 본 적이 있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거짓이 아니다!”3

선지자가 옴으로써 주님의 말씀이 커틀랜드에 임하게 되었으며, 이곳에서 교회의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다. 교회의 행정의 기본적인 조직이 나타났고, 선교사들이 외국으로 파송되었으며, 첫번째 성전이 건립되었고 중요한 계시가 많이 주어졌다. 성도들은 심한 핍박을 받았으며, 그들이 신앙과 용기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 보일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